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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가면
   
▲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화상황실 실장

“펜을 꺼내서 누르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우와, 신기하네요. 편하고 좋네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한데 모여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새로운 기능에 대해 한마디씩 칭찬을 늘어놓는다.

간접광고(PPL)는 특정 상품을 방송 소도구로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TV 드라마나 예능프로에서는 대놓고 광고를 한다.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처럼 자본은 ‘드러냄’에 거리낌이 없다.

포스코 노동자들이 창립 50년 만에 노조를 만들겠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로 그로테스크하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가면을 썼고 청테이프로 이름을 가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 5월 대한항공 직원들의 촛불집회에서도 가면이 등장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면 종류다. 당시 대한항공 노동자들은 얼굴에 가이 포크스 가면을 썼고, 포스코 노동자들은 하회탈을 썼다.

마치 시사프로그램에서 인터뷰 대상자가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로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이들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데 이런 풍경이 벌어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노조설립 움직임이 보이자 포스코측은 일대일 면담, 집중면담을 하며 가입자 ‘색출’에 나섰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포스코에 군대식 문화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 침해에 노동관계법이 보호막이 돼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조직하는 노동자에게 사용자가 해고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솜방망이’라고 부른다.

최근 5년간 노동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전체의 19% 정도다. 검찰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사건을 기소한 것은 16%였다. 검찰 평균 기소율 4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기업 처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지난 7년간 삼성을 대상으로 신고된 부당노동행위는 9천446건이었지만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793건으로 8%를 조금 넘는다. 피의자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단 1건이었으며 재판이 진행돼 실형이 선고된 가해자는 2명에 불과하다.

노동자에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으며, 법보다는 얇은 가면이 더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국정목표 중 하나는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결성을 가로막는 사용자측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의지로 단속, 처벌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넘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가면을 쓰고 노조를 만든다. 이 광경을 정부는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앞서 말한 스마트폰은 카메라 기능 외에도 온갖 첨단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삼성은 홍보한다). 하지만 포스코나 삼성 같은 대기업은 생산하는 제품만큼 세련되지 못한 전근대적 노무관리를 하고 있으니, 이들의 업그레이드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한국노총 조직화상황실 실장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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