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벌써 20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에서 기업구조조정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산별연맹들은 산별노조체제로 전환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내가 법률국장으로 있던 금속산업연맹은 조직체제 등 산별노조 전환 방안 마련에 나섰다. 사업장별로는 어렵다, 하나로 뭉쳐서 대응해야 한다며 산별노조야말로 한국 노동운동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2000년 전후로 산별노조 전환이 본격화돼 보건의료노조·금융노조 그리고 금속노조 등 대규모 산별노조가 출범했다. 금속산업연맹의 경우 2001년 2월 초 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 전환 방안을 결의한 후 노동조합 설립신고 절차를 거쳐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산별노조 본조와 산하 조직 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기업별 조직을 둘 것인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지역조직체제로 할 것인지, 교섭 및 협약 체결과 쟁의 권한을 산별노조 본조로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지부와 지회 등도 그 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등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조직·활동 방안을 두고서 논쟁이 치열했다. 단순히 한 산별연맹 내부에 머물지 않고 이 나라 노동운동의 논쟁으로 전개됐다. 이 논쟁의 결과는 규약 문제로 귀결됐고, 나는 법적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했었다. 노조는 기업별노조만 알고 활동해 왔던 터였다. 한국 노동운동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조차 기업별노조의 민주화에 관심을 두고 투쟁을 전개했던 것이지 산별노조 전환투쟁으로 전개했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산별노조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운동으로 실천되지 못했던 것인데, 막상 산별노조 전환을 추진하고 보니 많은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장 산별노조 설립부터가 문제였다. 산별연맹이 산별노조 전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니 산별연맹을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별연맹에 속한 기업별노조들이 모두가 산별노조로 조직형태변경 결의가 됐던 것이 아니고, 그 결의가 된 데에 한해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 조직형태변경 방식을 통한 전환이다 보니 법적 논란에 대비해 대법원 판례가 조직변경에서 요구하는 변경 전후에 실질적 동일성을 갖춰야 하는 것이라 산별노조의 지부·지회 등의 형태를 갖춰야 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결국 금속노조라는 노동조합을 별도로 설립하고서 여기에 각 기업별노조들을 그 금속노조의 지부·지회 등 하부조직으로 조직형태를 변경하도록 결의를 추진하게 됐다. 그 뒤 다른 산별연맹들이 같은 방식을 따름으로써 이 같은 방식은 산별노조 전환의 일반적인 방법이 됐다. 산별노조의 길에서 규약 및 조직체제 등을 마련하는 것은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산별 전환을 결의해 내는 것이었다. 산별노조가 출범하는 순간부터 산별연맹에서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시키기 위한 사업이 전부를 차지했다. 산별연맹은 소속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자신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활동하는 존재가 됐다. 쉽지는 않았다. 해마다 뭔가 계기를 만들어서 일제히 산별 전환을 위해 소속 기업별노조들에 조직형태변경을 결의하도록 추진했지만 재적조합원 과반수 참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때마다 산별연맹 임원 및 간부들은 산별노조야말로 고용과 임금 등 노동자권리를 높은 수준에서 보장해 줄 것이라고 교육하고, 연맹 소식지는 산별노조에 대한 선전으로 채워졌다. 2001년 설립된 금속노조의 경우 2006년에야 현대자동차 등 대공장 노조들이 전환을 결의해 비로소 금속산업연맹이 추진한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이때까지는 산별연맹 소속 기업별노조 대다수가 산별 전환을 결의하기 전까지는 그 전환을 결의해 산별노조 활동이 이뤄지면 비정규직문제도, 중소·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대규모 정리해고도, 장시간 노동도 해결해 낼 수 있다고 꿈꿨다. 그리고 10여년을 달려왔다.

2. 여전히 산별노조를 꿈꾸는가. 산별노조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여기는가. 산별노조 전환 사업을 추진하던 당시로 보자면, 오늘 우리 노조의 주된 조직형태는 산별노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부여한 과제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지난 20년을 달려온 한국 노동운동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분명히 산별노조로 전환을 이뤄 냈는데,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산별노조는 무엇인지 묻게 된다. 더는 산별노조를 꿈꾸지 않는다. 더는 산별노조면 해결해 준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에 대해 여전히 산별노조는 노동자의 희망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산별노조를 통해 노동자가 꿈꾸는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런 이들은 아직도 산별노조로의 길은 한참 더 가야 할 길이다. 이런 산별노조론자가 아닐지라도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는 할 말이 많다. 조직형태는 산별노조체제를 갖췄지만 그 조직활동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완전한 산별노조체제로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찌 아니겠는가. 오늘도 다른 사업장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가는 산별노조 조합원에겐 보다 더 함께 할 수 있는 산별노조로 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에겐 산별노조 본조와 기업지부·기업지회 사이 조합비 분배에 관한 다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내하청·비정규직 파업투쟁에 함께하지 않는 원청·정규직 조합원들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에겐 산별노조는 언제나 노동자권리의 길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나는 산별노조에 관해 쓰고 있는 것일까. 금속노조를 나온 지 10년, 산별노조가 쟁점이 되는 사건을 맡은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마 전 산별노조 쟁의행위에 관해서 발표를 부탁받았다. 대법원의 노동법연구회에서 산별노조 조합원이 다른 사업장 쟁의행위에 가담해 그 사업장에 진입·점거했던 행위가 공동건조물침입행위·경비업무방해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지 발표해야 하는 것이니 별수 없이 산별노조를 다시 고민하게 됐다. 2012년 유성기업 쟁의행위 사건이었다. 함께 투쟁하자고 만든 산별노조니 자신의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 쟁의행위에 가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른 사업장 사용자가 출입을 금지해도 경비의 저지를 뚫고 진입해 점거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죄가 되지 않는다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으니 산별노조 쟁의행위가 고민이다. 2000년대 초 금속노조가 출범하고 나서 법률원장으로서 나는 산별노조 조직활동에서 예상되는 법률문제에 관해 토론회를 열고 연구논문을 발표했었다. 그 일부는 실제 발생했고 법원 판결도 나왔다.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판결이유로 될 논리·근거를 찾는 일이다. 어쩌면 희망을 말하는 것, 산별노조로의 길도 그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무엇이 우리 노동자에게 산별노조를 꿈꾸게 하는가. 어떤 산별노조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일, 산별노조로의 길을 묻는 노동자를 위해서 오늘 산별노조가 할 일일 것이다.

3. 돌아보면 산별노조로의 길에서 내가 꿨던 꿈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규약대로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하고 쟁의하는 꿈은 결코 꿈이 아닐 거라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겼지만 꿈이었다. 기업지부·기업지회의 행위는 규약에 반한다고 질의회신하는 것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었다. 조합원 의사에 즉시 반응하는 노조 민주주의의 꿈도 금속노조를 설립할 때도, 대공장 노조들이 산별 전환을 결의해 새롭게 금속노조체제를 갖출 때도 실현해 내지 못했던 꿈이었다. 규약에 대한 검토 의견을 밝히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대의원대회에서 호소하는 것으로는 어림없었다. 다수가 되지 못하는 의견과 호소로는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그리고 금속노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있는 그대로 보자. 이 나라에서 산별노조는 덩치만 커진 채 지난해 했던 일을 올해도 반복하고 있다. 본조는 사용자단체 등을 상대로 한 산별중앙교섭을 내세우고, 조합원은 지부·지회 등 사업장 교섭만을 바라본다. 산별노조여서 할 수 있는 교섭과 쟁의를 조합원은 알지 못한다. 오직 산별노조에 관한 교육과 선전을 통해 그런 게 있다고 알 뿐 그것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 준다고는 알지 못한다. 내가 꿨던 꿈만 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토록 외쳤던 산별노조로의 길은 언젠가 실현될 꿈이었으면, 계속해서 우리 노동자가 꾸는 꿈이었으면 좋겠다. 이건 고작해야 산별노조를 법적 문제로만 고민하는 자는 꿀 수 없는 꿈일 게다. 그 꿈의 길이 노동자의 민주주의로 열리고 달리는 길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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