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

위험하지만 필요한 물, 항상 철저하게 관리해야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하천이 범람하고 산은 무너져 내렸다. 마을이 물에 잠기고 농경지는 매몰됐다.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한순간에 생계를 잃은 이재민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정부는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에 설치된 16개의 댐과 보를 모두 열고 방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7월 일본은 사흘간 계속된 폭우로 하천 제방이 무너져 200여명이 인명피해를 입었다. 라오스는 이례적인 폭우로 댐이 붕괴돼 수백 명이 죽고 1천300여가구가 수몰됐다.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와 가뭄, 폭우는 더 잦아졌고 더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물'은 더 위험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물이 필요하다. 물을 항상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물 관리, 누가 어떻게 하나

대한민국의 물 관리는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가 한다. 수공은 한강·금강·영산강·섬진강·낙동강 수계에 수도를 설치해 물을 공급하고, 댐과 보를 건설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한다. 수도를 정비해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과 댐·보를 정비해 홍수·가뭄을 예방하는 일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생산활동에 직결된다. 일시적·간헐적으로만 필요한 일이 아니라 1년 내내 계속 수행해야 하는 상시·지속적인 일이다.

그런데 수공은 상수도와 댐·보 같은 수자원시설에 대한 점검·정비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민간기업인 수자원기술주식회사(이하 수자원기술)를 포함한 6개 용역업체에 이를 맡겼다.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일을 외주화한 것이다.

외주화된 생명·안전 업무, 사실상 불법파견

수자원기술은 원래 수공 자회사로 설립돼 상수도와 댐·보 등 수자원시설의 점검·정비 업무를 전담했다. 2001년 민영화된 이후에도 용역계약 형식으로 같은 업무를 계속했다. 점검·정비 근로자의 소속과 계약 형식만 달라졌을 뿐 같은 근로자가 같은 현장에서 같은 업무를 계속 수행한 셈이다.

수공은 상세한 내용의 업무실시계획서 및 업무기준서를 통해 수자원기술 근로자들에게 직접 업무상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 수공 직원이 동일한 사업장에 상주하면서 수자원기술 근로자에게 업무를 지시·감독했고, 수공 직원과 수자원기술 근로자가 같은 업무채팅창에서 상황을 공유했다. 수자원기술 근로자는 수공승인 없이는 휴가를 자유롭게 갈 수 없었고, 장갑 하나를 구매할 때에도 견적서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수공의 이름과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작업하기도 했고, 수공 직원들이 가는 봉사활동에도 참석해야 했다. 수자원시설의 점검·정비에 필요한 측정용 장비와 고가의 공기구도 전부 수공 소유였다.

수자원기술은 오로지 수공을 상대로만 사업을 영위했고, 용역계약서에 기재되지 않은 업무도 수공이 요청하면 해야 했다. 수공이 지급하는 용역비 역시 용역내용에 따라 정해지지 않았다. 일정한 임률에 따라 작업에 투입된 근로자들의 수와 근로시간에 따라 정해졌다. 결국 수공은 사실상 위장도급·불법파견 형태로 국민의 생명·안전 업무를 외주화한 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따라 직접고용해야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일에는 강한 책임감과 직업의식이 필요하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열악한 대우를 받는 간접고용 근로자에게 그런 사명감까지 요구하기는 어렵다. 정부도 지난해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사람을 채용할 때에는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고 했다. 상시·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고, 특히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고용이 원칙이라고 선언했다. 나아가 공공부문은 민간부문을 선도할 모범적 사용자이므로 솔선수범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수공은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상시·지속 업무인 '물 관리'를 위법한 방식(불법파견)으로 외주화했다. 정부 원칙에도 어긋나고 현행법에도 위반된다. 민간부문을 선도할 모범적 사용자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비용절감과 이윤추구는 결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 수공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생명·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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