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민들레분회장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런데 국민 생명과 안전을 담당하는 의료 공공기관인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에서는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병원 하청노동자들은 “1년 동안 희망고문을 당했는데, 정규직이 되기는 되는 거냐”고 묻는다. 최근 일부 원청 병원들은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소속 병원 하청노동자들이 자회사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와 정규직 전환 방향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수백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가슴에 희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비록 선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했지만 선언 배경에 이용석 열사 이후 처절한 투쟁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가 1년이 지난 지금, "공공부문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던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따라 같은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3단계에 걸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직접고용과 함께 '자회사' 또는 '사회적기업'을 통한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같은 정부의 모호한 방침으로 현장이 어수선하다. 기본적으로 자회사는 원청기관 직접고용이 아닌 원거리 고용의 한 형태다. 원청기관에 법적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다. 나는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들레분회 분회장으로 자회사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원청이 임금·인원 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 자회사 구조가 현재의 용역업체와 무엇이 다른가. 자회사를 만들면 원청은 자회사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용역업체에 했던 것처럼 이윤과 일반관리비를 보장해 줘야 한다. 별도의 부가세도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무엇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것인가.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 1인당 도급비는 330여만원이지만 실제 임금은 200만원이 되지 않는다. 납득할 수 없는 구조 탓에 10년, 15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한다. 모순된 임금체계를 개선하지 않고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다. 이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수익구조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회사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회사는 노동조건 문제뿐만 아니라 원청 책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우리가 '진짜 사장'이라고 부르는 서울대병원장은 수십년간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병원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비정규 노동자들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임에도 병원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했다. 원청인 서울대병원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와 관련해 철저하게 책임을 회피했다.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어떻게 될까.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던 비정규 노동자들이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원청기관의 직접고용이 아닌 원거리 고용 방식으로는 결코 원청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원청 역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비정규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서 생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청기관과 상관없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도대체 자회사와 용역업체가 무엇이 다른가. 용역업체 이름이 자회사로 바뀌는 것 말고 무엇이 바뀌는가. 자회사는 하청의 또 다른 이름이다. 또 다른 차별을 불러올 뿐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다.

지난 수십년간 감내할 수 없는 저임금 구조에서 살아왔기에 이제는 더 이상의 차별을 거부한다. 투명인간이 아닌 서울대병원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길 염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백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망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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