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모성보호제도 사용실태 표
여성노동자 비율이 80%가 넘는 병원에서 임신은 축복이 아니다. 병원노동자 10명 중 3명은 "임신을 하고 싶어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상 임신순번제다.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50.4%는 임신 결정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에 대해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내가 임신을 하면, 바로 옆 동료의 업무가 가중되는 탓에 마음 놓고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출산전후휴가 90일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출근했다는 병원노동자가 33.3%나 된다. 노조가 올해 3~4월 조합원 2만9천62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다. 노조는 8일 "인력이 부족해 비인간적인 임신순번제가 운영되고 있고, 법정휴가마저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모성정원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모성보호제도는 '그림의 떡'

조합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병원에서 모성보호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다. 근로기준법이 임산부 초과근무와 야간근무를 금지하고 있는데도 병원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병원노동자 33.2%는 임신 중 초과근로를 했다. 16.6%는 야간근무에 동원됐다. 임산부의 무리한 노동은 유·사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사산을 경험한 병원노동자는 1천150명으로, 전체 임신·출산 유경험자의 31.3%다.

근기법은 유·사산시 임신기간에 따라 5~90일의 법정휴가를 주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산을 경험한 병원노동자 2명 중 1명은 유사산휴가를 전부 사용하지 못한 채 출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사산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응답자도 31.3%를 차지했다.

"마음 놓고 아이 낳고 싶다"

노조는 "병원노동자 모성보호가 취약한 이유는 법에서 정한 간호사 인력기준을 준수하는 의료기관이 13.8%에 불과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인구 1천명당 간호인력은 평균 9.3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절반 수준인 4.3명(간호조무사 포함)에 불과하다.

병원노동자들은 "모성정원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모성정원제는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돌봄휴직 등으로 발생하는 상시적인 결원인력을 고려한 정원제도다. 공무원의 경우 행정안전부의 '2016년 정부조직관리지침'에 따라 육아휴직으로 부족한 중앙행정기관 인력을 정규직 공무원으로 대체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모성정원제를 도입한 상태다.

노조는 병원 여성노동자의 10% 정도를 출산전후휴가 등으로 인한 상시적 결원인력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정원이 2천393명인 부산대병원은 출산전후휴가자 97명, 육아휴직자 185명으로 정원의 11.7%를 차지한다. 정원이 3천52명인 전남대병원은 출산전후휴가자 91명, 육아휴직자 233명으로 10.6%의 상시 결원이 발생한다. 이들 병원 모두 대체인력을 채용하지만 비정규직으로 충원하는 실정이다. 지방의료원은 육아휴직자만 대체인력으로 충원하고 출산전후휴가자 빈자리는 인력충원 없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원주의료원·인천의료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노조 관계자는 "임신·출산·육아휴직에 따른 대체인력을 정원외 별도 정원으로 추가하는 모성정원제를 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며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은 모성정원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지원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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