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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는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의 정당한 ‘능력’이 아니다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노종화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민주주의 사회는 능력 중심의 세계관, 혹은 적어도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리 언제나 불평등해 왔다. 피케티는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세력이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1조)는 원칙을 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적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을 헌법에 정하고 있다. 헌법 119조1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정함으로써, 능력에 따른 경제적 성과와 불평등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 동시에 헌법은 동조 2항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허용 가능한 범위를 초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에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헌법 119조2항은 지금껏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로의 경제력 집중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 심화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실태조사 결과 두 건을 발표했다. 먼저 “2014년 사익편취 규제 도입 이후 내부거래 실태변화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각종 규제 도입 이후에도 재벌 대기업의 내부거래는 유의미한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거래 규모는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로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주요 수단인 ‘일감 몰아주기’가 얼마나 성행하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공정거래위는 실태조사에서 각종 규제회피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행 규제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운영실태 분석 결과”를 보면 재벌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은 설립취지가 무색할 만큼 총수 일가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나 경영권 확보에 활용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익법인이 직접 계열사 지분을 취득한 후 의결권까지 행사함으로써 총수 일가의 우호지분 역할을 하거나, 스스로 내부거래 주체가 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방식으로 재벌 대기업과 총수 일가가 얻은 이익과 기업 지배력을 과연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쉽게 말해 일감 몰아주기를 재벌의 ‘능력’에 따른 정당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일감 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은 기업가정신 발현을 통해 얻은 부가가치가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가 없었다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경제주체들이 누릴 수 있었던 이익이 대기업과 총수 일가에게 집중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6월 말 민주노총은 ‘재벌갑질 피해사례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자동차·유통·건설·통신사업 등 재벌 대기업이 사실상 과점하는 영역에서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거래구조의 맨 밑에서 착취당하는 실정이 현장 목소리로 생생히 전달됐다. 어느 산업에서나 다단계 거래구조를 통한 임금 깎기와 간접고용이 만연했다. 원청인 대기업이 하청업체 노무비 절감에 적극 개입했다는 정황도 보고됐다. 소수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통해 더 큰 성장이 나타나기는커녕 경제력 집중을 위해 다수가 경제적 손해를 감당했던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법령 정비를 통해 공정거래위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범위(공정거래법 23조의2) 확대, 공익법인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한편 시민사회는 단순히 제도개선 촉구를 넘어 재벌갑질로 인한 피해사례를 적극적으로 취합·보고하고, 구제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정부와 국회만의 시대적 과제가 아니며, 재벌의 자발적 개선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총이 진행한 피해사례 발표회와 같은 행사가 앞으로 빈번하기를 희망한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정당하게 허용될 수 있는, 능력에 따른 불평등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를 단순히 기업가정신 발휘 없이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극소수의 땅 짚고 헤엄치기를 위해 다수의 경제적 약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아 왔기 때문에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재벌갑질로 인한 피해사례가 더 많이 보고될수록,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경제력 집중은 정당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기대한다.

노종화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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