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내 사무실 책상 위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지난 스승의 날 어느 제자가 보내 준 건데, 꽃이 활짝 핀 양란 두 포기에 잎이 넓은 열대식물 몇 포기를 같이 심어서 꽃과 잎이 잘 어울려 참 예뻤습니다. 보내 준 제자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나도 꽃을 좋아해서 잘 키워 보기로 했습니다. 작은 물 뿜이개를 준비해서 매일 물도 주면서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내 책상으로 올 때 이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꽃이 핀 양란은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종류인 데 비해, 같이 심은 열대 활엽수는 물을 자주 줘야 하는 종류였습니다. 좁은 화분에 같이 심겨 있어 구별해서 물 주기가 힘들었지만 조심조심 그렇게 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니 또 일이 생겼습니다. 화려하게 꽃이 핀 양란은 더 자라지도 않고 그대로였는데, 열대 활엽수는 물을 주는 대로 무럭무럭 자라 작은 화분을 다 차지하려는 듯한 기세였습니다. 양란 주역에 활엽수가 조역으로 받쳐주던 처음의 조화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활엽수가 커지니 물도 많이 줘야 하는데 그러려니 양란은 뿌리가 썩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고민이 깊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말 통계로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176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3.4%에 해당하며, 전라남도 인구에 육박하고 있다 합니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 특성이라고 배웠던 지리시간이 무색하게 됐습니다. 또 이는 2006년 54만명에 비하면 10년 사이 세 배 이상 늘어난 것인데, 그 증가 속도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다 합니다. 그중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인데 제조업이나 건설·농업노동 등 힘든 일은 이렇게 모두 외국인이 감당하면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주민에 대한 우리나라 정책이나 국민의 인식은 글로벌시대 세계 수준에서 볼 때 많이 뒤떨어져 있어 안타깝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아 인구절벽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인구 감소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가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유엔 기구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이직도 몽롱한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 귀화한 외국인은 10만명쯤 되는데 인구가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적을 뿐만 아니라 신청한 수에 따른 비율도 아주 낮다고 합니다. 난민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제주도로 피난 온 예멘 난민 500여명에 대한 논란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국민도 난민일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였습니다. 내 윗대 조상도 일제 강점기 때 제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서, 난민이 돼 살 곳을 찾아 간도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때 포로가 돼 남으로도 북으로도 못 가고 제3국을 선택한 분들 또한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분들은 결국 그 나라 국민이 돼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은 글로벌시대입니다. 지금까지의 민족이나 국가 개념으로는 누구도 편안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라 간의 다툼이나 갈등을 그대로 두고는 전 지구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국가가 힘들고 결국 국민들은 고통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고 배워야 합니다.

내가 화분에 물을 주며 고민에 잠겨 낑낑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젊은 직원이 지나가며 툭 던지듯 한마디 합니다.

“이사장님 뭘 그렇게 힘들어하세요? 그냥 조금 큰 화분에 옮겨 심으세요. 그러면 물주기도 좋고 서로 어울려 잘 자랄 것 같아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발상을 확 바꿔야 하는구나. 전제와 조건을 그대로 두고 억지로 뭘 바꾸려 하니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었구나.

꽃도 큰 화분으로 바꿔 삶의 기반과 조건을 새롭게 하듯 우리 삶의 기반도 그렇게 새로워질 수 있도록 내 생각과 마음을 먼저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더 크고 튼튼한 맞춤한 화분을 사러 시장으로 갔습니다. 다른 일도 많았지만 핑계 대며 미룰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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