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빨간 자전거 타는 아저씨/ 지나가는 동네 아줌마 숨바꼭질 노는 꼬마 아이들/ 아아 이젠 눈에 띄는 우체통만 보이면 속을 들여다보네/ 혹시 그 속에 숨어 계실까/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아저씨 난 기절할 것 같아요."(장필순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중에서)

오래된 노래 가사처럼, 집배원은 멀리서 빨간 자전거만 눈에 띄어도 가슴 설레던 추억 속 존재다.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거리와 골목에서 마주치면 어쩐지 내가 수신인으로 적혀 있는 편지 한 통 들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추억과 달라서, 오늘의 집배원들은 하루 11~12시간, 연평균 2천869시간의 장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며 2017년에만 12명이 과로사하거나 과로자살하는 끔찍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덕분에 우정사업본부는 노동·시민단체로부터 ‘살인기업 특별상’을 수상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유감스럽게도 집배원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데에는 노동조합의 탓도 크다. 우정노동자 2만7천여명이 가입한 한국노총 산하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집배원의 근로조건 개선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고, 2015년 지부장과 집배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정사업본부의 토요일 근무 재개 방침에 전격 동의해 주는 ‘참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집배원들은 진정으로 집배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할 자주적 노동조합, 곧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천신만고 끝에 내디딘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노조 활동을 사사건건 훼방하거나 꼬투리 잡아 조합원들을 징계했다. 집배노조와 조합원들은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여러 건의 징계취소 소송,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및 재심판정취소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집배원들은 대개 공무원이므로, 그 소송들에서 특히 쟁점이 된 것은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인 집배원이 헌법상 노동 3권과 근로기준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을 어느 정도까지 향유하는가의 문제였다.

한 집배원은 연가사용 신청만 하고 승인을 얻지 못한 채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토요일 근무 재개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복귀명령도 거부했다가 감봉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그 취소소송 판결에서, 공무원 연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연차휴가에 대응하는 권리행사고, 따라서 연차휴가 시기변경권 행사요건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 그 승인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인데, 우정사업본부는 그러한 사유 없이 승인을 거절했으므로 집배원이 승인 없이 연가를 사용했더라도 근무지 무단이탈이나 명령불복종으로 볼 수 없다며 감봉처분을 취소했다(우정사업본부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심리불속행으로 확정됐다).

위원장 대상 징계도 있었다. 집배노조 위원장은 부당노동행위 의심 사안의 진상 파악을 위해 초과근무시간 중에 총괄국장 면담을 요청하고 다른 조합원들과 집배실에서 연좌했다가 국가공무원법이 금지하는 집단행위를 하고 적법한 쟁의행위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봉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그 취소소송에서도,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인 집배원은 국가공무원법 66조(집단행위의 금지)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노동운동 등 집단행위를 할 수 있고, 집단행위는 주장관철성이나 업무저해성이 없어 쟁의행위로 볼 수 없으며, 나아가 정당한 조합활동이고, 근무시간 중의 조합활동이라도 언제나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며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결들은 집배원들도 노동 3권과 노동관계법상 권리 주체임을 확인해 준 것이자, 우정사업본부가 내린 징계들이 징계사유조차 존재하지 않는 부당징계일 뿐 아니라 집배노조의 활동을 방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정사업본부도 마음을 고쳐 먹어 볼 만하지 않을까. 집배노조는 근래 전국 우체국을 순회하며 집배원들을 만나고, 우정노동자들로 조직된 다른 민주노조들과 힘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집배노조와 우정노동자들의 건투를 빈다. ‘빨간 오토바이 타는’ 집배원들의 더 나은 삶과 건강과 노동환경을 심심(深心) 응원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