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총파업에 따라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입·출금이 정지될 것에 대비해 파업 불참은행으로 예금을 옮기는 한편 협력업체에 직접 자금 지급 방안을 별도로 세우는 등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

기업들은 당장 필요한 단기자금을 현금으로 확보하고 어음의 만기를 연장하는 한편 필요자금의 분산배치, 무역금융 재점검 등을 서두르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외환거래의 경우 임시직 직원들이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기업의 대외 신인도에도 심각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협력업체 자금 결제 대책 마련 서둘러

국내에 5000여개의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파업에 불참하는 은행으로 예금일부를 옮겨 놓고 은행 업무가 정상적으로 안될 경우 직접 협력업체에 결제대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자금팀 관계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은행에 넣어놓은 원화·외화 예금이 인출이 안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서울에 있는 큰 지점들은 파업기간 중에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공산이 크지만 지방에 있는 조그만 은행 점포들은 직원들이 한꺼번에 빠질 경우 업무 마비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매자금 결제가 막히거나 어음할인이 안될 것에 대비해 파업불참을 선언한 하나은행 및 한미은행으로 자금 일부를 옮겼다"며 "은행 업무가 제대로 안되면 현금으로 인출해 직접 협력업체에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은 각 부서별로 필요한 단기자금을 현금으로 확보했으며 추가 소요자금은 파업 불참은행으로부터 조달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전산기능이 마비되지 않는 한 기업금융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대량 이체 나 어음 및 수표결제 등은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외환거래 문제 생기면 대외 신인도 타격

기업들은 국내에서의 입·출금 이나 어음 할인 등의 문제는 그런대로 서로 양해하고 넘어갈 부분이 있으나 외국은행 및 외국기업과의 거래관계인 외환거래에 문제가 생길 경우 기업 및 국가 신인도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무역협회는 금융파업으로 매입의뢰(Nego), 신용장 개설,무역대금 결제 등 3개 부문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반을 구성했다.

무역협회는 각 은행에 외국환 업무에 대체인력을 우선 배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금융애로 신고센터와 비상대책반을 10일부터 가동하기로 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수입 신용장(L/C)개설이나 수출 네고, 대금 결제 등 외환거래에 차질이 생길 경우 무역 신용도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파업하지 않는 은행에서 외환거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영업팀과 협의했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수출 신용을 개설한 업체에 한해 철강소재를 공급해 왔던 포항제철은 은행파업으로 거래업체가 신용장 개설을 못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수출용 철강 소재를 공급하기로 했다.

유상부 회장은 10일 "은행 파업중 신용장 개설이 안되더라도 소재를 정상 공급해 거래업체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외환거래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은행이 아니라 기업의 신인도가 떨어지게 된다"며 "주요 거래은행을 통해 해외 은행과도 협의를 하고 있으나 뾰족한 대책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 중소기업 자금경색 심화 우려

중소기업들은 단기자금 확보를 위해 거래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수
금에 나서는 한편 어음의 만기연장을 당부하고 있다.

금형생산업체인 J정공 관계자는 "평소에는 거래처에서 입금된 돈을 주거래은행에 이체해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파업 불참은행으로 자금을 몰아놨다"며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에는 거래처를 방문해서 직접 수금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D사 관계자는 "파업동안에 대출 만기가 돌아오거나 하는 경우에는 공휴일과 같은 기준에 따라 안 갚아도 기한이자만 물면 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법으로 규정된 것도 아니고 은행마다 규정이 달라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섬유업체인 H사 관계자는 "기업들 가운데서는 어음 할인 등을 통해 그달 그달 운영자금을 힘들게 꾸려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금융권 파업이 자칫 중소기업의 목을 죌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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