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준비했던 우비와 조끼는 일찌감치 동났다. 우산을 손에 들고 대열 뒤 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어졌다. 한국오라클노조(위원장 김철수)가 16일 오전 서울 강남 한국오라클 본사 앞에서 개최한 파업승리 결의대회 모습이다.

노조는 지난해 임금단체협상 결렬에 따라 이날부터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체결,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 해소를 요구하며 18일까지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결의대회 참가자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법정노동시간을 준수하라"거나 "욕설하지 마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한국오라클은 주로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거나 클라우드서비스를 제공한다. 노동자들은 IT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장시간 노동에 허덕인다. 노조에 따르면 서비스 지원조직에 소속된 직원은 주말도 없이 1주일에 100시간 넘게 일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연봉제라는 이유로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한다. AS 직원은 고객기업에서 욕설 등 갖가지 갑질을 당하고, 영업직 직원은 회사에서 매출을 강요받기 일쑤다.

김철수 위원장은 "사용자의 강제노동과 폭행을 금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은 오라클 노동자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라며 "근기법을 준수하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를 파업을 통해 표출하는 상황이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노조는 파업 이후에도 회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투쟁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17일 오후 대의원대회를 열고 무기한 파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전체 조합원(550명)의 대부분인 500여명이 참석했다. 외국계 IT회사 문제를 공감하는 한국휴렛팩커드노조·한국마이크로소프트노조도 참석해 파업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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