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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 노조 만들 줄 몰라서 안 만들겠습니까
   
▲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사례 1. 직원이 열댓 명인 사회적 기업이다. 직원들의 연대성을 높이려고, 사측이라 할 수 있는 센터장과 사무장이 나서 노조를 권했다. 직원들은 거부했다. 노조 하면 피곤하기만 하지 더 나아지는 게 뭐가 있냐며 반대했다.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센터장과 사무장은 노사협의회라도 하자고 했고,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례 2. 한 노동자가 있다. 엄혹했던 시절 화염병 달고 노동조합 빡세게 했던 옛 투사다. 지금은 경기도의 작은 중소공장에 다니며 어렵게 산다. 어느 날, 아직도 노동운동하는 옛 동지를 만나 반갑게 술을 마셨다. 예전의 무용담을 신나게 떠들고 현재의 고단한 일상도 얘기하던 중 옛 동지가 그에게 노조를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쓴웃음 짓고 술을 털어 넣었다. 그러고 말했다. “내가 뭐 노조 만들 줄 몰라서 안 만들겠냐. 다달이 직원 임금 챙기고 여기저기 빚 갚느라 허덕이는 회사 사정 뻔히 안다. 동료도 다 안다. 그 상태에서 노조 만들자고 해 봐야 씨알머리 안 먹힌다. 결국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렇다고 당장 먹고살기 빠듯한 동료들에게 그 싸움을 하자고 하면서 노조 만들자고 할 수 있겠냐. 민주노총도 세상 바꾸는 투쟁에 소홀한데, 그게 되겠냐. 까짓 내 인생이야 그렇다 치고 남 인생 망칠 일 있냐.”

이런저런 넋두리가 더 있었다.

“살다 보니까, 노조도 뭔가 할 만하다는 건더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더라. 노조도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더니 그냥 술이나 마시자면서 말을 돌렸다.

사례 3. 한때 노동조합과 가까운 곳에서 일했던 어떤 이의 페이스북 글이다. 지금은 일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이유는 노조를 만들어서라도 이 회사에 다니고 싶다, 부당해고 소송을 내서라도 이 회사에 복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회사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번 회사도 이번 회사에서도 구조조정 당하신 분들 대부분 부당해고로 다투고 싶으나 계속 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렬하다고.”

노동운동을 한다면 어디선가 접했을 사례들이다.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1천500만 노동자의 상당수가 처한 상황이다. 그들이 전체 노동자의 80%에 육박하면서도 노조 가입률은 1%밖에 안 되는 이유다.

노동운동은 그들을 조직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비정규직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공단 노동자 조직화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시도했다. 구로 일대 서울 남부지역은 30년 가까이 눈물겹게 분투했다. 그런데도 진척이 없었다. 만들면 깨지고 만들면 없어지고, 산별 조합원으로 받아도 얼마 못 가 사라지곤 했다. 이런 문제를 겪는 경우가 더 있다. 노후희망유니온·노년유니온·시니어노조 등의 퇴직노동자 조직사업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청년유니온·알바노조 등의 청년노동자 조직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렇게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활동가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나를 비롯한 다수 노동운동가가 조직노동 집사 노릇에 취해 있을 때도 묵묵히 밑바닥을 조직하고자 했던 운동의 모범이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노동운동의 한계 때문이었다. 1천500만의 처지에 적합한 방식의 조직 전략을 세우지 못한 것에 있었다.

노동대중은 투쟁을 하려고 노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처지를 개선해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노조를 하는 것이다. 투쟁은 목적이 아닌 수단인 것이다. 먹고살 만하다고 생각하면 멈추는 것이 투쟁이다. 총파업 상징이었던 중심부 노조 조합원들이 이 사회 상위 10%로 진입한 뒤 기·승·전·투쟁을 거부하게 된 배경이다. 중심부 사업장 비정규직이 질기게 싸워 정규직이 되고 나서는 투쟁을 회피하는 배경이다. 노동대중에게 노조와 투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노동대중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노조를 하지 않는다. 100인 이하 사업장 1천500만 노동자 대다수가 노조를 하지 않는 까닭이다. 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이 인간의 보편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이 단순한 현상을 깊게 살피지 못했다. 노조를 몰라서, 홍보와 교육이 부족해서, 탄압이 겁나서라고 판단했다. 그들 당장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어 사업장을 대상으로 투쟁해도 당장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그들에게, 노조 만들어 투쟁하자는 하나의 공식만 들이댔다. 투쟁해서 성공하면 얻을 게 눈곱이고 실패하면 잃을 게 태산인 그들에게 투쟁 공식만 들이밀었다. 성공할 수 없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제풀에 지쳐 자포자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직 및 관리가 편한 100인 이상 사업장에 집중됐다. 지불능력이 있는 사업장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양대 노총이 제각각 200만 조합원 시대를 진정 꿈꾼다면 지금부터라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체제 전복을 꿈꾸든 체제 개량에 멈추든, 노동운동이라면 1천500만 조직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노동자의 절대 다수인 데다, 세상 변화가 그 누구보다 절박한 밑바닥이기 때문이다. 그것 없이 변혁을 주장하는 것은 손 안 대고 코 푼다는 불가능한 미몽이다. 그것 없이 개량을 시도하는 것도 바닷가에 모래성 쌓는 삼일천하 춘몽이다.

노조 사각지대에 있는 1천500만 노동자를 노조로 안내하는 출발점은 ‘그들이 노조에 가입하면, 그들 당장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체계와 사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에 있다.(다음 편으로 이어짐)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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