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8.3.15. 선고 2017구합68080 판결

사건의 개요

피고보조참가인(참가인)은 2012년 1월25일 설립돼 상시 약 160명의 근로자를 사용해 금융업을 영위하는 법인이고, 원고는 2012년 4월3일 참가인에 경력직 차장으로 입사해 업무추진부에서 상품개발 업무 등을 수행한 사람이다.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전보명령이 무효라며 이에 응하지 않은 근로자의 행위를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대법원 1995.5.9. 선고 93다51263 판결 참조)를 설시하고, 징계사유 중 ①~④는 원고가 2016년 7월1일자 영업추진역 발령에 따르지 않은 행위에 관한 것으로서, 참가인이 2016년 7월께 시행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 및 그에 따라 행해진 2016년 7월1일자 영업추진역 발령이 유효함을 전제로 한다면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의 효력에 관해 먼저 판단했다.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가인에는 노동조합이 없고, 참가인이 2016년 7월께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을 시행함에 있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은 바 없다. 이에 대해서는 참가인도 인정했다.

참가인은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이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참가인이 2016년 7월께 시행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은 근로자의 근로조건 등에 관한 준칙의 내용을 정한 것으로서 사용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작성된 사업장 내부의 규칙인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참가인은 영업추진역 프로그램 시행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대상판결은 최초 편입시 직전 연도 총 연봉의 10% 범위 내 감액을 하도록 하고, 개인별 목표달성률이 70% 미만이면 경고를 하고 직전 총 연봉의 15% 범위 내 감액을 하도록 하는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을 새롭게 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명백히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된 경우라고 판단했다.

참가인은 2016년 7월 시행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 중 임금 감액에 관한 부분은 저성과자들에 대한 경각심 제고를 통해 실적 향상을 위해 정한 내용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적용된 적이 한 차례도 없어 실질적으로 불이익한 내용이 없으므로 이러한 변경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대상판결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의 작성·변경을 통해 근로자가 가지고 있는 기득의 권리나 이익을 박탈해 불이익한 근로조건을 부과한 경우 당해 취업규칙의 작성 또는 변경이 그 필요성 및 내용의 양면에서 보아 그에 의해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를 고려하더라도 여전히 당해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적용을 부정할 수 없기는 하나,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 그 동의를 받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므로 사회통념상 합리성 유무는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를 전개한 후에 “참가인이 2016년 7월1일 시행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은 그 편입 자체로 임금 감액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고, 실제로 임금 감액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임금 감액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변경한 바 없고, 이에 관해 근로자들에게 통지한 적도 없는 이상 참가인에 의한 임금 감액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근로자에게 실질적으로 불리하게 변경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참가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고, 참가인은 영업추진역 프로그램 변경에 관해 근로자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한 바 없으며, 그 외에 사용자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참가인이 2016년 7월1일께 시행한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참가인은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해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임금 감액에 관한 부분, 직무태만 행위에 대한 인사상 징계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부분에 한정되고, 평가관리 방법에 관한 부분은 근로조건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취업규칙의 변경에 해당하지 않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대상판결은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은 최초 편입시 그 편입 자체로 임금 감액을 하도록 하고 있어 그 전체가 근로조건과 불가분적으로 결합돼 있고, 평가관리 방법에 관한 부분만 별도로 효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은 결론적으로 ①~④사유는 2016년 7월1일자 영업추진역 발령의 효력이 없으므로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할 수 없고 ⑤사유는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되나 위 사유만으로는 사회통념상 근로계약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원고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로 보기에 부족해 이 사건 해고는 징계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거나 이를 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검토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조건 등에 관한 사업장 내부 규칙을 말한다. 근로기준법 4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해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취업규칙에 규범력을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개헌 논의 과정에서 헌법 32조3항을 “노동조건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공동으로 결정하되, 그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로 개정하는 안이 제시됐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개헌이 된다면 현행 취업규칙제도는 공동결정제도 등으로 개선돼야 할 것이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라는 절차적 제한을 가했다. 이 조항은 대법원 판례에 의해 확립된 법리를 근로기준법에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다.

저성과자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은 저성과자로 평가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거나 영업실적 등을 부과하고 이를 평가해 급여 감액이나 징계 등 불이익처분을 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말한다. 저성과자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을 새롭게 도입하는 것은 직원들이 그 프로그램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고, 프로그램 적용대상자로 되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위험성에 노출된다. 따라서 저성과자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의 도입은 그 자체로 취업규칙의 중대한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소위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일본에서 판례를 통해 확립된 후 노동계약법에 명문화됐는데, 대법원이 그 법리를 원용해 마치 우리 법제상 허용되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와 같은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성립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유효요건으로 집단적 동의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 굳이 적용 여지를 찾는다면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로 고려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 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는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결여한 변경은 무효라고 해야 한다. 대법원이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사회통념상 합리성 이론이 적용될 여지를 인정한 것은 부당하며, 그러한 태도는 시급히 변경돼야 한다.

한편 대법원 판례가 제시하는 사회통념상 합리성 유무 판단의 기준인 △취업규칙의 변경 전후를 비교해 취업규칙의 변경 내용 자체로 인해 근로자가 입게 되는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측의 변경 필요성 내용과 정도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대상(代償)조치 등을 포함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상황 △취업규칙 변경에 따라 발생할 경쟁력 강화 등 사용자측의 이익 증대 또는 손실 감소를 장기적으로 근로자들도 함께 향유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해당 기업의 경영행태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 경위 및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에 비춰 봐도 이 사건에서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이라는 양대 지침을 통해 저성과자에 대한 통상해고 프로그램 도입을 적극적으로 종용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참가인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저성과자 영업추진역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정부는 2017년 9월25일 양대 지침을 폐기했다. 대상판결은 저성과자 영업추진역 프로그램 도입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보고, 그 도입에 근로자 과반수 동의라는 절차 요건을 결여한 경우 무효라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당연한 법리를 확인했지만 노동현장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