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매일같이 들여다보는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같은 노동법령들이 어느 순간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노동법이라 하면 이 나라 노동자 노동권의 근간이고, 노동법이 사라진다면 당장 다음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득해질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득 그 실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너무나 멀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법은 활자의 모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쇄해 법전이라는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노동관계의 여러 측면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 및 위반시 제재를 활자로 길게 정리해 놓은 것이 노동법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걱정인 것이다. ‘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활자들의 모임이 과연 얼마나 힘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쯤 되면 "노동법을 지키라고 고용노동부·노동위원회·법원·경찰·검찰이 있는데 대체 무슨 걱정이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와 같은 기관들이 지도 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노동법 준수가 담보되지 않는다. 사업장에서의 노동법 위반 문제를 제기하고, 위 기관들에 위법사실 시정을 요청하고, 사용자에게 노동법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노동조합의 활동 없이는 높고 먼 곳에 있는 노동부·노동위원회·법원·경찰·검찰이 노동자들의 곤란을 헤아려 알아서 움직여 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직장갑질119를 통해 보육교사들의 노동문제를 들여다보게 되면서다. 보육교사들의 노동권은 이중 삼중으로 제약돼 있다.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이 있어서 최근 가입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가입률은 낮고, 근로기준법 위반(특히 휴게시간 미부여,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미지급)이 빈번하며, 높은 노동강도와 긴 노동시간으로 악명이 높다.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도 원장의 눈 밖에 날까 봐, 블랙리스트에 올라 향후 이직마저 어려워질까 봐 쉽지 않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도 다른 어린이집 교사들을 만나기 어려워서, 또 업계에 소문이 날까 봐 주저하게 된다. 그래도 용기를 내 문제제기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사직 강요와 징계다. 때로는 왜곡된 정보를 전달받은 학부모마저 보육교사를 몰아세우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보육 현장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가정(假定)이 아니라 현실이다.

보육교사도 노동자다. 다른 노동자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노동권의 온전한 주체다. 이들의 직업이 보육교사라는 점은 노동권을 이중 삼중으로 제약당해야 할 어떠한 이유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현장 목소리를 들어 보면 보육교사가 원장에게 노동법 위반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 보육교사가 자신의 노동권을 찾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대재앙이 발생한 것처럼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육교사도 노동권 주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결과 보육교사들은 헌신적으로 영유아들에게 돌봄을 제공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법의 보호를 제공받지 못하고 만성적인 노동권 침해 상태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근래 직장갑질119를 통해 보육 현장 위법 실태가 다시금 확인되면서 노동조합 문을 두드리는 보육교사들이 늘고 있다.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위법사항이 조금씩이나마 시정되는 사례들도 확인되고 있다. 그저 활자의 모임일 뿐이었던 노동법이 힘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진짜 법이 돼 가는 길이라 믿는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이 점차 이어져, 보육교사들이 잃어버린 노동권을 되찾는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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