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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의 이유] 누가 여섯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몇 년 전 일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남편이 자동차 와셔액 진열대 앞에서 1.8리터짜리 병 두 개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한참을 비교했다. "와셔액 하나 사는데 뭐 그리 오래 걸리냐. 아무거나 사라"는 면박에 남편은 "메탄올 와셔액은 싼데, 에탄올 와셔액은 3배 정도 비싸"라고 말했다.

"그럼 싼 거 사"라고 하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메탄올 중독 뉴스 못 봤어? 기자 맞아?"

그제서야 생각났다. 그즈음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스마트폰 부품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청년들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그들의 시력과 맞바꾼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자동차 와셔액처럼 우리 생활과 가까운 용품까지 메탄올이 사용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자동차 와셔액도 메탄올로 만드는 거였어? 무섭다. 에탄올로 두 병 사자."

메탄올 중독 실명사건으로 떠들썩했던 2016년 어느 날의 기억이다.

사업주에게 파견노동자 안전이란?

<실명의 이유>(사진·북콤마·1만5천원)는 잊고 있던 그날의 짧았던 기억을 소환한다. 저자인 선대식 오마이뉴스 기자는 2015~2016년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한 여섯 명의 청년노동자(이현순·방동근·이진희·양호남·김영신·전정훈)를 만나 이들에게 닥친 비극과 현재의 삶을 기록했다. 그리고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는지 파헤쳤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누구는 상견례를 앞두고 있었고, 누구는 아직 엄마 손길이 필요한 어린 딸을 두고 있었다. 메탄올은 이들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았다.

시력을 잃은 이들은 스마트폰 부품공장에서 일한 파견노동자였다. 보호장비는커녕 공장 어느 누구도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액체가 독성 화학물질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파견노동자로 공장을 돌리는 사업주들에게 파견업체에서 쉽게 채용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의 안전은 애초부터 관심 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저자가 2016년 기자 신분을 속이고 반월·시화공단 파견업체에 위장취업해 한 달간 일하면서 겪은 현장 경험이 곳곳에 배어 있다. 스마트폰 부품 조립공장에 널려 있는 정체불명의 화학물질.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라고는 주방용 비닐장갑·목장갑, 감기 걸렸을 때 쓰는 흔한 마스크뿐이었다. 공기청정기 조립공장에서 열심히 분무기를 뿌려 가며 공기청정기 겉면을 닦던 저자가 분무기 내용물이 메탄올인 걸 알고 기겁한 사연은 웃프다.

저자는 책에서 "메탄올에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들은 단지 운이 없는 사람들일까" 하고 반문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보호장비 착용과 국소배기장치 설치를 명시하고 있지만 많은 사업주에게 파견노동자 안전은 관심 밖이다. 돈벌이가 우선이다. 보호장비를 사고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려면 돈이 든다. 저자는 대기업 하청문제와 메탄올 중독 실명사건의 근본 원인으로 파견노동을 지목한다. 그들은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여섯 명의 실명,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피해자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사업주는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푼돈을 던져 주고 피해자들과 합의할 생각만 했다. 원청인 삼성전자·엘지전자는 수수방관했다.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일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게 두 대기업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파견 확대에 꽂혀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고용노동부는 파견노동자들의 실명사건을 보도자료 한 장으로 축소해 버렸다.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손상을 입은 사고가 일어났고, 해당업체에 전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집중감독을 실시하고 있다"는 보도자료 어디에도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한 파견노동자라는 내용은 들어 있지 않았다.

파견사업주들은 벌금 200만원에서 최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 판결을 받았다. 사용사업주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최대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이다. 여섯 명의 눈을 앗아 간 죗값치고는 너무 가볍지 않나.

저자는 "그래서 누가 이들의 눈을 멀게 했느냐"라는 물음에 이렇게 얘기한다.

"대기업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바로 실명의 이유다.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이들이 공장에서 쓰러지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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