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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선거법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64년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 시절 박정희 정권의 한일회담 추진에 반대하는 6·3시위에 참여했다가 소요죄로 사법처리됐다. 이렇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른바 6·3세대에 이름을 올렸다.

6·3세대는 1천여명 넘게 체포되고 350여명이 내란죄와 소요죄로 구속당하면서도 박정희 정권에 맞서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2년 넘게 했다. 그때 거리로 나섰던 20대 청년들은 지금 70대 노인이 됐다. 그사이 그들 대부분은 이 나라 극우세력을 지키는 철옹성이 됐고, 극소수는 자유주의 보수정당인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주변 정치인이 됐다. 박관용·이재오·서청원·안택수·하순봉·현승일·김경재·김덕룡·정대철·손학규·이부영·김원길 등이 그들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냐고 묻기도 역겹다.

64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옥살이했다. 이 전 대통령은 96년 국회의원 시절에 공직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 혐의로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받았다. 96년 4월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당선 과정에서 법으로 정해진 비용을 초과 지출해서였다. 그는 이런 사실을 폭로한 비서관을 국외로 도피시켰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에 9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당내 경선에 나선다. 의원직까지 던지고 나왔지만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최병렬로 낙점됐다. 시장 선거 본선에선 고건 전 총리(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당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대법원은 벌금 700만원을 확정했다.

2002년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선거에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재기했다. 서울시장으로 대통령이 될 초석을 다졌다.

검찰이 96년 선거법 위반 수사를 꼼꼼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난 14일 아침 서울중앙지검 앞에 선 이 전 대통령을 보면서 이 나라 검찰을 다시 떠올렸다. 10년 새 다스 소유주를 놓고 검찰은 엇갈린 결론을 내렸다. 10년 전에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앞선다. 동시에 결론이 뒤집혔으면 당시 수사했던 검찰이 해명이라도 해야 한다. 검찰은 10년 전에도 "다스는 MB 것"이라고 말했어야 한다.

2008년 독일 니더작센주 주지사였던 크리스티안 불프는 아내와 함께 맥주축제인 ‘옥토버 페스트’를 보기 위해 뮌헨을 방문했다. 이때 영화제작사 대표가 불프 부부의 호텔비 90만원을 대납했다. 불프 주지사는 2010년 6월 5년 임기의 독일 대통령이 됐다. 2011년 12월 독일 언론이 “불프 대통령이 주지사 때 집을 사기 위해 시중금리보다 1%포인트 낮은 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은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연이어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장과 사주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한 사실이 폭로되자 여론은 악화됐다.

이때 독일 검찰은 한국 검찰과 달리 "현직 대통령의 수사면책권을 박탈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다음날 불프 대통령은 사임한다. 5년 임기의 절반을 갓 넘긴 채.

이렇게 하라고 국민이 검찰에 그 많은 권력을 준 거다. 유럽에서도 비교적 권력을 가진 자들의 부패사건이 많았던 이탈리아 검찰은 92년부터 4년 동안 검찰발 혁명을 통해 고위인사 3천여명을 구속했다. ‘깨끗한 손’으로 불렸던 밀라노법원 부정부패수사본부는 검찰의 모델로 회자된다. 당시 이탈리아 언론은 검찰 수사 과정을 공정하게 보도하려고 특종경쟁을 지양하는 ‘깨끗한 손’ 풀 기자단을 구성해 부패세력의 범죄·체포·재판 과정을 깊이 있게 취재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이정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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