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18.2.13. 선고 2014다33604 정직처분 등 무효확인


1. 구체적 사실관계

가. 노조설립 및 파업의 경과

원고들은 2009년 12월1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를 설립하고, KBS측에 교섭을 요구했다. 원고들의 언론노조 KBS본부는 상급단체인 언론노조의 위임을 받아 2009년 12월29일 피고 한국방송공사에 단체교섭을 요청했고(2010년 1월4일 개최일) 2010년 1월5일과 1월14일 총 3회에 걸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피고 공사는 복수노조에 해당해 단체교섭의 주체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단체교섭에 불응했다.

이에 원고들 노조는 서울남부지법에 단체교섭응낙 가처분을 신청했고, 상급단체인 언론노조 역시 직접 2010년 2월12일 피고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피고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단체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위 법원의 인용 결정이 있은 뒤 약 1개월 뒤인 4월8일에서야 교섭을 위한 첫 교섭위원 간 상견례(1차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으나, 2010년 5월께 11차 회의에 이르는 동안 피고 공사는 가장 기본적인 교섭대상인 임금인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임금협상안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2010년 4월14일 단체교섭에서 노사 양측 간사 간 ‘공사와 본부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성실하게 교섭하고 원만한 타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명시적인 합의를 체결했음에도, 2010년 5월10일 피고 공사는 위 인용결정에 대해 항고함으로써 위 합의정신을 배반하기에 이르렀다(사건번호 2010라857, 2010년 7월23일 결정). 따라서 2010년 7월23일 서울고등법원 결정 전까지 원고 노동조합과 피고 공사 간에 실질적으로 교섭이 진행되기 어려웠는데, 이것은 피고측이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고들 노조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파업에 돌입했다. “조직개편안과 김인규 사장 반대”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나. 징계사유와 정도

한국방송공사는 불법파업 주도 및 참가, 이사회 진행 방해,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 등을 징계사유로 해서 본부장이던 원고 엄○○·이○○를 각 정직 6월, 성○○를 정직 5월, 김○○에 대해 정직 4월의 징계처분을 했다.

2. 각 심급별 판단

가. 1심 판결

1심 법원은 원고들에 대한 징계사유 중 ‘파업 참가의 점’에 관해, 이 사건 파업의 주된 목적이 김인규 사장의 퇴진 요구로 봐 ‘불법파업’으로 판단하고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했다. ① 본부노조는 김인규의 사장 취임에 반대하면서 KBS노조와 별도로 설립됐고 ② 파업에 이르기까지 2009년 12월21일 1호부터 2010년 5월18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노보를 발행했는데 방송의 공정성 보장과 김인규 사장 퇴진요구를 내용으로 직원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전개했으며 ③ 단체교섭 결렬의 주된 원인이 피고 공사의 조직개편안에 대한 반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④ 파업과정에서도 단체협약 체결보다는 방송의 공정성 등을 이유로 한 문제제기에 치중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자 했던 점 등에 비추어 ⑤ 따라서 파업의 주된 목적이 방송의 공정성 및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조직개편안 및 김인규의 사장 취임에 반대하려는 것이었다.

조직개편과 관련한 문제는 원고들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기존 노조인 KBS노조 역시 제기한 문제였다. 조직개편안의 주된 내용이 부서단위 아웃소싱, 1천여명의 인원감축 계획 등으로 고용 및 근로조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에게는 KBS노조와는 달리 아무런 설명조차 해 주지 않는 피고의 절차적 비민주성에 대한 반발에 기인한 문제로서 파업의 주된 목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나. 항소심 판결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단체교섭이 지연되고 기본적인 공간이 없어 그 기반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피고 공사로부터의 조합원들에 대한 불리한 전보발령·노조탈퇴 강요를 견뎌 내야 했던 원고들 노동조합으로서는 ‘조직개편안 반대’로 인해 단체교섭이 결렬됐다는 1심 법원의 판단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위 인정사실에 나타난 다음과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파업은 KBS본부가 피고와 사이에 13차에 걸쳐 단체교섭을 진행했으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한 쟁의행위로서 그 목적은 임금 인상, 방송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에 있었다고 판단되므로 그 목적에 있어 정당성이 인정된다.”

사건 당시 김인규 사장에 대해 예산집행상 문제나 조직개편 강행 등으로 비판하기는 했으나 퇴진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공사측은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단체교섭응낙 가처분 결정 등을 받고서야 비로소 교섭에 응했으나,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조직개편 반대를 교섭사항으로 삼았으나 이것이 교섭결렬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파업의 주된 목적은 임금·단체협약과 공정방송 쟁취였는데, 이는 공정방송위원회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 상고심 판결

“쟁의행위의 목적은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나 이는 반드시 임금 등 근로자의 경제적 지위의 유지·향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점, 피고는 국가기관방송사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최대한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게 하고 건전하고 민주적인 여론을 형성해 이를 국민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피고 구성원들이 방송의 제작·편성·보도과정에서 방송의 공정성이 문제되는 사안이 발생한 경우 이를 논의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조건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원고들 노조의 첫 단체협약 체결이 파업의 주된 목적이라고 보고, 조직개편 반대를 제외하더라도 쟁의행위를 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 밖의 징계사유도 인정되지 않거나 인정되더라도 징계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3. 판결의 의미

가. 원고들에 대한 징계사유 중 가장 핵심적인 파업 참가 부분에 대해 노동조합의 일부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노동조합 설립 후 첫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실질적 상태에 주목해 파업 목적을 판단해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 행사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나. 조직개편과 같은 경영권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노동조합으로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정당한 조합활동의 영역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공정방송 문제’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방송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는 것은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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