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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기다림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마는, 이제 막 산업재해 사건들을 한두 건씩 하기 시작해 어렴풋한 감 정도밖에 없던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연락을 받았다. 2017년 1월 초 일요일 아침, 재해 노동자는 연장근무를 위한 출근준비를 하다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의식이 없이 병원에서 생을 이어 가고 있다. 노조와 상담을 하고 병원을 방문해 뇌동맥류가 세 차례에 걸쳐 파열을 일으키면서 뇌지주막하출혈이 심했고 그래서 의식이 없는 것 같다는 담당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유족급여 청구 건이 아니고서야 재해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경우는 그때나 지금이나 처음이었다. 배우자의 황망함과 간절한 기대를 접하고 나서는 솔직히, 내가 이 사건을 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사자들의 힘듦이 가장 크겠지만 그 힘듦을 후벼 파서 관련 사실을 정리하는 작업은, 결이 다른 힘듦을 안겨 주곤 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재해자의 상황과 배우자의 기대, 노조의 열정 그리고 알 수 없는 오기가 한데 모여 사건을 진행하게 됐나 보다 생각한다.

전기ㆍ소방관리 자격증이 있는 재해자는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다섯 차례 낙방 끝에 정규직 '응시' 자격을 얻은 시험에 합격했고, 재해발생 6개월 전 출퇴근시간만 2시간이 넘는 곳으로 발령을 받았으며, 발령을 받자마자 기존 전기ㆍ소방 관리업무에 더해 평생 해 본 적 없던 회계업무를 전담했다. 재해 발생 당시는 연말 회계 결산 등으로 업무량과 노동강도가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과로가 쟁점이었다. 노동시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회사 방침에 따른 연장근무시간 제한으로 실제 전산에 찍힌 연장근무시간은 월평균 30시간 정도였다. 다소를 감안하더라도 1주 평균 48시간 정도의 근무를 했는데, 기존 과로 판단기준에 따르면 말 그대로 턱도 없는 수준이었다. 실제 연장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CCTV 기록과 보안장치 로그인·로그아웃 기록, 하이패스 이용 기록, 휴대전화 기지국 송수신 기록을 확인했으나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재해자가 새로운 업무를 맡은 점, 그 업무량이 과다한 점, 노동강도가 높았던 점을 중점적으로 재해경위서에 쓸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재해자 담당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노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수개월이 지나서야 정리됐다.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소견서를 받으러 간 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처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려운 거 아시죠? 제가 뭘 해 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 소견서를 잘 써 주셨다.

올해 1월 ‘첫’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1월1일부터 뇌심혈관 질병에 대한 업무상재해 판정 지침이 바뀌었다. 과연 지침을 바로 적용할 것인가, 또 그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보류 결정이 났다. 연장근무시간과 관련해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회사 동료와 주변인들의 확인서를 제출했다. ‘2차’ 회의가 열렸다. 팽팽했나 보다. ‘3차’ 회의가 열렸다. 다음날 지사를 통해 산재승인 소식을 들었다. 해당 지사도 세 차례 회의를 열어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처음이라고 했다. 설 전날이라 다행이었다.

산재 사건에서 업무시간은 흔히 알고 있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과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엄밀한 업무 수행시간이라기보다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상의 시간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근기법상 대기시간과는 또 다른 개념이라고 할까). 상기 사건에서도 아침 일찍 출근한 청소노동자 확인을 통해 재해자가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보다 거의 1시간 일찍 조기에 출근한 것을 집중적으로 주장했다. 해당 시간만 추가해도 1주 근무시간은 52시간을 넘게 된다. 더욱이 뇌심 판정 지침과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출퇴근재해가 업무상재해로 인정되는데, 이는 출퇴근 과정을 업무와 연관해 판단하겠다는 취지인 만큼 출퇴근시간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업무시간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업무량과 업무 강도를 고려함에 있어서도 문제는 존재한다. 위 사건에서는 업무시간뿐 아니라 회계업무라는 새로운 업무내용과 업무량·업무 강도가 업무상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재해 당사자가 혼자서 해당 내용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모든 업무 관련 내용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본 사건의 경우 노조가 매우 적극적인 노력을 해서 관련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노조 등의 도움이 없다면 개별적인 입증은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매우 많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변경된 지침으로 보완되기는 했으나 입증책임과 관련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재해 당사자가 병상에 누워 있는 한 현재진행형이지만, 그래도 1년의 기다림이 이번 결과로 조금 편한 한숨을 내쉬게 할 수 있기를, 그리고 곧 깨어나시기를.

고관홍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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