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라 드 렘피카, <발코니에 있는 키제트>, 1927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퐁피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타마라 드 렘피카, <자화상(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 1929년, 목판에 유채, 개인소장.

“그녀의 예술은 반항적인(defiant) 몸짓 그 자체다.”

폴란드 출신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가 <발코니에 있는 키제트>로 1927년 보르도국제미술전에서 1등상을 받자, 피츠버그 선-텔레그래프 신문이 내놓은 평이다. 지금 보자면 별스러울 것도 없는 이 그림이 도대체 어떻게 봐서 반항적이고 도전적이라는 이야기일까.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는 당시 열한 살이던 타마라의 딸 키제트다. 짧은 원피스 차림에 귀밑을 겨우 덮을 정도의 짧은 곱슬머리를 한 키제트의 모습에서 제 나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메리제인 슈즈에 니삭스 차림이 겨우 인물이 소녀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줄 뿐이다. 게다가 키제트의 무표정한 얼굴과 차가운 눈빛은 부드럽게만 묘사됐던 미술 속 순진한 소녀들의 모습과 너무도 판이하다.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이러했다. 허리를 조인 모래시계 실루엣의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커다란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어여쁜 소녀.

하지만 그림 속 키제트는 허리선이 없는 일자 형태의 짧은 원피스 차림에 단발머리다. 한 소녀가 이전 시대에 여성다움을 상징하는 차림을 모두 벗어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힌트는 발코니 너머에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뾰족하게 세워진 마천루가 마치 경쟁하듯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풍경. 일제히 불을 밝힌 빌딩들은 활기에 넘쳐 보이고, 마치 새로운 문명을 계시하듯 위풍당당하고 화려하게 묘사돼 있다. 바야흐로 20세기였던 것이다.

날카롭고 차가운 ‘모던’을 그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회는 격동했다. 무수한 기술적 진보로 건물은 석구조 한계에서 탈피했다. 철근콘크리트와 거대한 유리, 고층 엘리베이터를 갖춘 빌딩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계문명이 지배하는 도시생활에 듬뿍 젖었다. 모던, 근대가 시작된 것이다.

타마라는 이러한 금속성이 가득한 기계시대의 차가움을 그대로 그림에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체주의에서 이끌어 낸 기하학적 형태를 과감하게 초상화에도 도입한 것이다. 인물의 얼굴표정과 윤곽선, 옷 주름과 머릿결 처리, 날카롭게 끊어지는 선묘와 유리처럼 매끈한 색채, 그 뒤에 펼쳐지는 높고 뾰족한 스카이라인의 도시풍경. 그 누구도 도시적이고 산업사회적인 질감을 타마라처럼 매력 있게 전달하지 못했다. 타마라는 어느새 전근대적인 것들에 반발하고 도전하는 아이콘이 됐고 그 후 그녀는 거침없이 성공 대로를 걷게 된다.

영리한 타마라는 이 ‘시대의 요청’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대로 이행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후 근대화가 본격화하던 시기의 변화된 여성상을 화폭에 효과적으로 재현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수동적이고 온순하고 가정적인 여성의 모습을 벗어나 ‘남자처럼’ 야외활동을 한다거나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여성을 대담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타마라는 이를 ‘여성미를 포기한’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고 능력 있는 여성의 모습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지만, 이미 시대는 타마라의 그림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왜냐하면 타마라의 여성이미지는 이미 당시 프랑스 사회에 나타나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던 여성상인 ‘가르손느(garconne, 남자 같은 여자)’와 관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르손느는 소년이란 뜻의 프랑스어 ‘가르송(garcon)’에 여성형 어미인 'e'를 덧붙여 만든 말로, 짧은 머리를 하거나 바지를 착용한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가르손느는 단지 외모적 변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새롭게 출현한 여성 유형을 지칭하는 의미로 발전하게 됐다. 1922년 7월 출간된 빅토르 마르그리트의 소설 <라 가르손느>가 크게 유행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덕이 크다. 10여년 동안 100만부 넘게 팔리고 12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보수적인 부르주아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난 열아홉 살의 소르본대학교 여학생 모니크 레르비에는 어느 날 자신의 약혼자에게 숨겨 놓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니크는 약혼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한 익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지만 오히려 그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1년 후 긴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모니크는 한 여배우와 동성애에 빠져든다. 술과 마약에 빠져 여러 과감한 성적 모험을 감행하던 그녀는 자신을 존중해 주고, 삶의 의미를 되살려 준 조르주 블랑셰라는 한 남성을 만나게 되고 광기와 죽음의 유혹에서 가까스로 벗어나게 된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여성상을 그린 이 작품은 즉각 논란에 휩싸였다. 22년 7월12일부터 23년 3월4일까지 9개월 동안 15개 잡지가 150편의 기사를 쏟아 낼 만큼 이 책은 여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출판되자마자 로마교황청 금서목록에 오른 데 이어, 기차역 판매대에서 전부 수거됐고 공중도덕수호협회와 대가족가장협회의 항의에 직면해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설 여주인공 같은 ‘가르손느’는 남자 같은 여성, 더 나아가 레즈비언처럼 전통적 도덕규범을 벗어난 여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풍성한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길게 기르며 가정적이고 온화한 여성미를 포기한 이 여성들은 남성과 가정에 순종하는 전통적 여성의 덕목과 스타일에 거스른다는 이유로 불손하고 타락한 여성으로 비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도 정작 일반 여성들은 가르손느의 모습에 ‘해방감’을 느꼈고 급기야 짧은 머리가 전 유럽에 급격하게 유행하게 된다. 결국 20년대 중반부터 ‘짧은 머리=근대’라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지면서 짧은 머리를 하지 않는 것은 유행에 뒤떨어진 것으로 이해되기까지 했다.

파격적 여성성 ‘가르손느’를 재현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타마라의 그림이 등장했다. 그녀의 그림은 ‘근대적 여성’ 가르손느의 이미지를 충분히 재현한 것과 다름없었다. 타마라는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가르손느’의 화신이 된 것처럼 살았다. 이는 타마라의 자화상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에도 드러난다. 차갑고 도전적인 눈매의 타마라가 녹색 스포츠카에 앉아 있다. 이 차의 이름은 당시 최고 부자들이 타고 다녔던 ‘스포츠카의 전설’ 부가티. 그녀는 광택이 흐르는 회색 숄을 두르고 회색 운전모를 쓴 채 능숙하게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풍만한 입술은 새빨간 립스틱으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누가 봐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당당함이 돋보인다. 게다가 타마라는 자신을 ‘오너 드라이버’로 설정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짧은 머리와 편안한 복장뿐만 아니라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활동은 남성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따라서 ‘여성과 자동차’라는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암시한다. 타마라는 자신을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자신감 있고 독립적인 신여성으로 그려 낸 것이다.

그동안 여성들에게는 언감생심이던 것, 즉 ‘가정에만 묶여 있지 않고, 사회에 나가 다른 이름을 얻을 수 있는 남성의 권력’을 얻기 위해 그림을 그린 타마라. 역시나 이 그림은 가르손느 논쟁과 마찬가지 시비가 붙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남성 중심 사회가 그녀의 숨겨진 의도를 은연중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74년 유명 자동차 잡지인 <오토저널>이 타마라 자화상을 소재로 쓴, 다음과 같은 기사 구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여인은 자유롭다!(This woman is free!)”

<화가의 마지막 그림> 저자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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