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윤수 축구평론가

이흑산! 서른네 살의 복서다. 본명은 압둘레이 아산. 카메룬 군대에서 폭력을 참다못해 한국으로 망명한 지 2년여. 그는 마침내 ‘검은 산’이라는 강렬한 이름의 한국 이름으로 한국 권투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난민 자격까지 얻었다.

아프리카 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태어난 이흑산은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권투가 그의 희망이었다. 열여섯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킥복싱과 권투를 배웠다. 스무 살이 넘었을 때 군대에서 직업군인 겸 권투선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대했다. 그러나 카메룬은 폴 비야 대통령의 독재가 30여년째 지속되는 곳. 이흑산은 체계적인 군사훈련은 물론 군인 월급도 거의 받지 못했다. 군인 체육 국제대회에 출전해도 대전료 절반을 군에 바쳐야 했다. 이흑산은 2015년 10월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카메룬군 대표로 참가했다가, 대회 5일째 되던 날 선수단 버스에서 도주했다. 그것은 곧 탈영이었고 체포되면 끔찍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흑산은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4년 동안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신청자의 3%(767명)에 불과하다. 이흑산은 난민 신청 기간 동안 천안의 한 체육관에서 연습을 지속했고 그러던 중 한국 챔피언에 오르면 난민 인정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조언을 듣고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다. 2017년 5월 이흑산은 전 한국 미들급 챔피언 이규원과 맞붙어 판정승을 거뒀고 이를 계기로 7월 법무부는 이흑산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완전한 이주자 신분은 아니다. 언젠가 고국 카메룬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다. 현재는 더 이상 추방당하지 않고 체류할 수 있는 신분이다.

이른바 ‘단일민족 신화’가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이렇게 ‘또 하나의 친구’를 사귈 수 있게 해 줬다. 2006년 한국 스포츠계와 사회를 들뜨게 했던 하인스 워드 선수 얘기도 해 보자.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MVP 하인스 워드. 그는 항상 웃었다. 동료들에게, 팬들에게, 미디어에게. 그 낙천성과 성실함이 하인스 워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웃음은 그의 ‘방패’이기도 했다. 그는 인종차별에 맞서 언제나 ‘웃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고 말했다. 워드는 1976년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와 어머니 김영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제는 인권적 차원에서 절대 쓰지 않는 용어가 된, 그러나 과거에서 많이 쓰였던 용어를 잠시만 쓰자면, 그는 ‘혼혈아’다. 미국인 남편과 이혼한 김영희씨는 아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워드는 뛰어난 능력과 기술, 그리고 팀 동료들과 함께 선전해 2006년 NFL 슈퍼볼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그가 2006년 4월 방한했는데 각 방송사들은 물론 기업체와 지방 자치단체까지 하인스 워드 잡기에 올인했다. 워드의 성공담과 김영희씨의 헌신적인 모정을 기업 홍보에 이용하려는 대기업들이 워드측과 접촉을 시도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정치인들과 지방자치단체까지 만남을 주선해 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한다. 워드는 당시 어느 은행의 ‘애국 광고’, 즉 항상 태극기를 바라보며 노력하고 달린다는 내용에까지 출연했다.

이 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맥락이 작동한다. 먼저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미지의 재현이며 둘째는 ‘성공한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다른 말을 전한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미국에 이민 온 한국 사람들도 우리들을 무시하고, 피부 색깔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내가 그렇게나 힘들어할 때는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조선일보 2006년 4월6일자)라고 말한 적 있다.

워드 역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며 환영하는 ‘한국인’들이 조금은 실망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은 위대한 나라고 어디든 아름답지만 인종 간의 갈등이라는 어두운 면이 있는 것 같다. 미국의 소수인종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처럼 한국도 혼혈인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긍심이 강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만큼 1%라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면 한국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조선일보 2006년 4월12일자)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출신 22%가 실업 상태이며 이들 중 단 2%만이 사무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단순노동직이다. 펄벅재단 조사도 비슷한 통계를 보여 준다. 1964년부터 2002년까지 다문화 가정 아이들 4천400여명의 학업 상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9.8%가 초등학교 때 학업을 그만두고, 17.5%가 중학교 때 학교를 떠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이른바 ‘일반 중학생’의 겨우 1만1천명이 학교를 그만둔다는 수치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그래서 하인스 워드는 방한 중에 이렇게 호소했다. “피부색 등을 이유로 놀림감이 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표 내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 한국 내 다문화 아동들의 존재와 역할이 지역사회와 국가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길 바란다.”(경향신문 2006년 5월30일자)

90년대 이후 한국은 아시아에서 주요한 이주 목적국이 됐다. 2014년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75만명에 이른다. 한국으로 귀화하는 사람은 2008년 6만5천511명에서 2009년 7만3천725명, 2012년 12만3천513명, 2014년 14만6천78명으로 늘고 있다. 2009년 이후 해마다 1만명 이상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2006년 4월 한국 정부는 ‘다인종·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다문화’는 어느덧 한국 사회의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단일문화·단일민족’에 긍정적인 균열을 내고 있는 중이다. 다문화주의를 정부가 인정 또는 표방한다는 것은 여러 문화를 단일국가 시스템 안 시민권의 하나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민 또는 귀화자들이 그 자신을 지탱해 온 문화적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새로 이주한 곳에서 ‘공적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국 사회는 변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외국문화 유입과 외국인선수 활약이 증가하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외국인선수가 처음으로 뛴 83년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프로스포츠 리그에서 외국인선수 제도를 도입했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에 팀 내 영향력이 지대하다. 경기력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 사회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들이 경기력이 좋거나 팬들에게 우호적일 때는 한국인선수·구단·팬 그리고 미디어까지 그들을 우호적으로 대하지만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날 경우’ 우리 스포츠 문화는 결코 외국인선수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억지스럽게 한국 고유문화를 강요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사회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이 발전하기 어렵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사회를 위해 이주민과 소수자에게 배타적이고 근대적인 시민적 개념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시민권 개념이 필요하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인 흐름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하인스 워드와 이흑산이 필요하다. 그들을 위해, 또한 모두의 미래를 위해!

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