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친구할래! 지난 17일 늦은 오후 종로문화센터에서는 이주노동희망센터가 연 조촐한 송년행사가 있었다. 지역주민을 비롯해 국내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 앞에서 그동안 센터가 활동한 모습을 소개하고 음악과 연극공연도 무대에 올렸다. 이 공간을 통해 지역과 하는 일의 벽을 넘어 너나 할 것 없이 ‘친구’가 돼 보자는 게 행사 취지였다. “자, 다 함께 외쳐 봅시다. 친구할래! 친구할래!” 한용문 이주노동희망센터 이사장의 선창으로 모두가 하나가 된 자리였다.

특히 마지막 연극공연은 관객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극단 초인이 마련한 <한국의 꿈>이다. 연초부터 다양한 곳에서 공연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음향과 조명을 제대로 갖춘 무대에서 이야기 전체를 풀어낸 것은 이날 공연이 처음이라고 했다. 초연은 아니지만 초연인.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족들이 생활하는 작은 집까지 팔아서 브로커에게 뜯기고 도착한 한국, 출발하기 전부터 알아 버린 ‘빨리빨리’, 몇 번의 단속과 또 몇 번의 도망, 그리고 끊이지 않는 소중한 동료들의 재해, 결국엔 주인공도 한 쪽 다리를 잃어버리는 줄거리를 ‘무언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우리가 받은 감동은 그 어떤 수백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선주민(원주민)과 이주민! 몇 번 글이나 말로 접한 적이 있지만, 늘 신선했다. “우리는 그저 이 땅에 먼저 정착한 선주민일 뿐입니다. 조금 늦게 온 분들이 바로 여기 모인 이주노동자들입니다.” 양자가 다르지 않다는 말씀. 한용문 이사장의 간명한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고 보니 요즘 귀에 쏙 와 닿는 라디오 광고가 있다. “앞으로도 한민족만이 살아갈까요?” 하고 묻고 “아닙니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고 답하는 형식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 참 많이 나아졌다.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 마침 이날은 세계이주노동자의 날(18일) 하루 전이다. 이주노조(위원장 우다야 라이)는 광화문 일대에서 스스로 자축하는 집회를 마치고 행사장에 함께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반드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대신 노동허가제를 시행하라고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약일지언정 1만원을 향한 최저임금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그 그늘은 깊고 어둡기까지 하다. 이주노동자들이 다수인 사업장이 대표적이다. 변변치 않은 숙식을 제공한다는 핑계로 그만큼의 돈을 임금에서 공제해 온 게 관행 아닌 관행이었다. 요즘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상여금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겠다고 한 마당이니, 이들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질 리 만무하다. 걱정이 크다.

이주노조의 주장 중에는 불법체류자지만 이미 오랜 기간 국내에 정착했고 더구나 가족까지 있는 경우에는 합법체류 허가를 해달라는 내용도 있다. 뉴스를 통해 단속이 두려워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나이임에도 자녀를 집에 방치하는 경우를 간혹 접하게 된다. 법을 떠나 참으로 인간적이지 못하다. 건강한 사회라고도 할 수 없다.

바라건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법이 무조건 적법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가 문명국임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예외적인 요건을 정해 합법화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는 곧 같은 처지에 놓였을지도 모를 우리나라 시민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트럼프 정권에서 시행한 신이민정책을 많이들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추방당한 이들 중에는 중남미인 못지않게 아시아계, 특히 한국계 국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는 헌법을 만들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이주노동자도 마땅히 모든 기본권의 주체가 돼야 한다. 노동기본권을 예로 들자면 ‘국민’으로 한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그 누구라도 노동기본권을 누려야 한다. 망명권을 폭 넓게 인정하자는 주장도 새겨들을 만하다. 모든 규범을 모름지기 국경과 인간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낡은 과거가 되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 갈 헌법은 그 이상이 돼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는 이미 우리의 ‘친구’이지 않은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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