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아침저녁으로 칼바람이 분다. 눈이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이런 날이면 눈에 밟히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 곳곳에서 천막을 치고 때로는 비닐 한 장에 의존한 채 정리해고 철회와 노동 3권 보장을 외치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다.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는 법이다. 내겐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그러하다. 노동조합을 만든 지 한 달 만에 공장에서 쫓겨났다. 이후 구미에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벌써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2년 반 동안 노숙투쟁 중이다.

아사히초자화인테크노한국 주식회사는 세계 4대 유리 제조업체인 아사히글라스의 국내 법인이다. 2004년 경상북도와 구미시로부터 50년간 12만평에 이르는 공장부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아 구미공단에 설립됐다. 총 2천억원을 투자해 2016년까지 12년 동안 그 4배인 8천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법인세·지방세 면제 등 파격적인 세금혜택을 누렸다.

반면 비정규 노동자들은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1년 365일 3교대와 주야 맞교대 근무를 번갈아 가며 했다. 더 화나는 것은 수시로 노동자들을 징계하거나 권고사직 또는 집단해고 방식으로 내쫓은 회사 태도였다. 참다못한 노동자들은 2015년 5월29일 구미공단 최초로 비정규직노조를 설립했다. 이에 회사는 같은해 6월30일 사업장 전기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휴무를 결정했다. 조합원 전원을 사업장에서 퇴거시킨 후 다음날부터 용역 100여명을 배치해 사업장 정문을 봉쇄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3월25일 다음과 같은 행위를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예컨대 △회사가 조합원들의 사업장 출입을 봉쇄해 출근을 막은 행위 △개인물품을 가지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행위 △하청업체와의 도급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도해지를 통보하고 실제 해지한 행위 △사업체 폐업을 빌미로 희망퇴직을 종용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정당한 노조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해고노동자들의 생활안정과 재취업을 위해 지원대책을 마련하라는 구제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6월16일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에 대해 취소 판결을 했다. 회사(원청)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 보기 어렵고, 부당노동행위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위 구제절차와 별도로 2015년 7월21일 회사를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 혐의로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에 고소했다. 구미지청은 최초 몇 개월 동안 회사와 하청업체 관계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자료를 제출받는 방식으로 5천페이지가 넘는 수사기록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미루다 2년이 지난 올해 8월31일에야 비로소 검찰에 송치했다. 아직까지 해당 수사기록에 편철된 문서들의 제목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부당노동행위 사건이 대개 그렇지만,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모두 쫓겨난 이 사건의 경우에는 증거수집이 너무나 어려웠다.

중앙노동위 재심판정에서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하청업체 대표와 대리인 노무사의 심문회의 진술이었다. 특히 노무사의 진술은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을 담고 있어 공익위원들이 신빙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회사가 하청업체와 계약해지에 대한 거액의 보상금 지급에 합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소송에서 하청업체 대표 등은 사실이 아닌 사실확인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회사를 편들었다. 회사 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무관심했고, 일부 관리자들은 조합원들을 적대시하기까지 했다. 검찰 등 수사기관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기소는커녕 경미한 혐의로도 조합원들을 불러 수사하고 기소하면서 회사의 뒷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조합원들은 꿋꿋이 2년 반을 버텼다. 오늘도 많은 동지들이 감기에 걸렸고, 핫팩에 의지하며 밤을 보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헌호 지회장을 비롯한 23명의 동지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전국을 다니면서 여러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을 표하고 싶다.

최근 노동부 구미지청은 178명의 해고 당시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시정지시를 했고, 이에 불응한 회사에 17억8천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아사히 자본에 반격을 가할 시점이 온 것이다. 불법파견 민사소송도 이미 시작됐다. 구미공단에 다시 들꽃이 활짝 필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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