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고용노동부가 하는 모든 근로감독에 '직장내 성희롱'이 포함된다.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여부와 성희롱 발생시 사업주 조치 여부를 점검한다. 직장내 성희롱이 발생한 사업장과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증언이 연이어 나오고, 성폭력 고발 '미투' (Me too·나도 당했다) 캠페인이 확산되는 등 공분이 커지면서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피해자 중심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직장내 성희롱 문제 전담 근로감독관을 채용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근로감독시 성희롱 예방교육 점검=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14일 이 같은 내용의 '직장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우선 연간 2만여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모든 근로감독에 직장내 성희롱 분야를 포함시킨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행위자를 징계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는 해선 안 된다. 사업주가 이런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또 '직장내 성희롱 피해 상담 및 신고절차'를 노사단체와 여성단체 등과 협조해 집중 홍보하기로 했다. 피해 신고를 위한 기초 상담은 노동부 고객상담센터(대표전화 1350)와 고용평등상담실에서 할 수 있다. 접수된 신고는 사업장 관할 지방노동관서에서 조사해 법 위반이 확인되면 시정지시하고, 불응할 경우 사법처리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한다.

사업주 처벌 수위도 높인다. 국회가 지난 9일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하면서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벌칙을 엄하게 했는데, 이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았을 때 현행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500만원으로, 성희롱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할 경우 2천만원 이하 벌금을 3천만원 이하로 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일부 조항을 위반하면 과태료를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기업에 '사이버 신고센터' 설치 권고=사업장 스스로 성희롱을 예방하고 대응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성희롱 피해자가 손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사내 전산망을 이용한 신고센터를 설치하도록 기업에 권고하고, 사내 전산망이 없으면 성희롱 고충처리 담당자를 지정해 운영하도록 한다.

30인 이상 사업장이면 설치해야 하는 노사협의회에서 직장내 성희롱 예방대책을 논의하도록 할 계획이다. 향후 노사협의회 주요 안건에 성희롱 문제가 논의될 수 있도록,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협의사항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사후 조치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노동부는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법령과 정보를 일반 직장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해 배포했다. 스스로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판단력과 감수성을 점검할 수 있는 자가진단 도구를 앱으로 개발해 다음달 초 보급하기로 했다.

임서정 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은 "직장내 성희롱을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를 확산하고 정부에서는 법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이날 대책 발표 후 최근 성희롱 논란을 빚고 있는 강동성심병원과 한국국토정보공사(LX)를 15일부터 수시근로감독한다고 밝혔다.

◇"성평등 전담 근로감독관 채용해야"=여성계는 직장내 성희롱 분야를 점검할 근로감독관이 피해자 중심의 성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 최근 5년간 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 2천190건 중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단 9건에 불과한 이유도 근로감독관이 직장내 성희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근로감독관들은 회식 자리 이후 일어나는 성희롱·성폭력은 직장 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며 "사업주나 가해자들은 노동부나 검찰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가 불기소 처분이 나면 그때부터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여가부는 이날 "근로감독관의 성인지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을 신규 지원하겠다"며 "현행 공무원 위주의 성평등 교육 대상을 기업 임원, 시·도의원, 지역 내 사회복지지설 종사자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배진경 공동대표는 "기존 근로감독관들을 교육하기보다는 직장내 성희롱 문제나 성평등 문제를 전담하는 근로감독관을 새로 뽑아야 한다"며 "면접에서부터 성평등의식을 갖춘 근로감독관을 채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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