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7.9.27. 선고 2017나18971 판결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1. 대상판결

가. 사실관계

지난해 3월17일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가 회사의 노조탄압과 가학적 노무관리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다 목숨을 끊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등 동료 조합원들과 인권단체·종교단체 등으로 구성된 ‘노조파괴 범죄자 처벌, 유성기업 노동자 살리기 공동대책위원회’는 고인을 추모하고 유성기업 상황에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같은해 3월23일부터 서울광장에서 이 사건 농성을 주최했다.

이 사건 농성 참가자들은 3월23일 밤 10시께부터 다음날 새벽에 이르는 시각, 그리고 그로부터 4월 초에 이르기까지 수일 동안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침낭·깔판·비닐 등 방한용품을 지속적으로 빼앗겼고 일부 참가자는 그 과정에서 상해를 입었다. 또한 농성참가자에 대해 경찰은 불심검문 대상이 될 수 없는 카펫이 담긴 종이가방을 뒤져 공무원증 제시 및 검문 이유 등을 전혀 고지하지 않은 채 이를 빼앗았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방한용품을 모두 빼앗긴 채 쓰레기봉투와 우비를 뒤집어쓰고 농성을 지속해야 했다.

향린교회는 같은달 27일 부활주일을 맞아 고 한광호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이 사건 농성장에서 개최하기로 했는데, 경찰은 기도회에서도 위와 같은 물리력을 동일하게 행사했다. 경찰은 당시 앰프·깔판 등 예배물품을 준비하던 성직자와 교인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예배물품을 빼앗았다. 그 과정에서 예배 방해행위에 항의하던 성직자의 소지품이 파손되고 교인 한 명이 경찰에 의해 땅에 내동댕이쳐져 머리를 부딪혀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에 이 사건 농성·기도회 참가자들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경찰의 위법한 공무집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나. 1심판결의 판단

1심판결은 농성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강제력 행사가 법률상 근거가 없다며 그 위법성을 확인했다. 그러나 기도회에서의 강제력 행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이 사건 농성을 미신고집회로 보고 원고들이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해 불법집회를 했다며 위자료를 대폭 감액했다.

다. 대상판결의 판단

대상판결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농성을 미신고집회로 보고 경찰의 해산명령에 공대위측이 불응했다고 인정했지만, 경찰이 침낭·깔판 등을 수거할 무렵은 농성 인원이 줄어들고 있을 무렵으로 경찰이 물품 반입을 제한하고 이 사건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던 침낭·깔판을 수거하기 이전에는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농성에 참가한 사람들이 침낭·깔판 등을 사용한다고 해서 특별한 위험이 가중될 것으로 추단하기는 어려운 점, 경찰이 위와 같이 침낭·깔판 등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원고1(농성참가자)이 다리에 찰과상을 입고, 기도회에 참가한 교인인 원고3이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응급실에 내원해 치료를 받은 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경찰의 위와 같은 압수 행위가 중대한 경찰 장해 상황에서 이를 제거하기 위한 절박한 실력 행사였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에 비춰 보면, 위 인정 사실만으로는 이 사건 농성 현장에서 침낭·깔판 등을 수거하고 그 과정에서 원고 1·3에게 상해를 가한 경찰의 행위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의 즉시강제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그 범위를 명백히 넘어서는 것이어서 적법한 경찰권의 행사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상판결은 원심에서와 동일하게 원고들 소유의 일부 방한물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고, 위자료에 대한 감액을 유지했다.

2.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가. 법적 근거 없는 경찰 직무집행의 위법성 확인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돼야 하며 남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다(1조2항). 대법원은 경찰의 직무집행 한계를 밝힌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경찰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행위가 눈앞에서 막 이뤄지려고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이고, 그 행위를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 곧 인명ㆍ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상황이어서, 직접 제지하는 방법 외에는 위와 같은 결과를 막을 수 없는 절박한 사태일 때에만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1항에 의해 적법하게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고, 그 범위 내에서만 경찰관의 제지 조치가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평가될 수 있다(대법원 2008.11.13. 선고 2007도9794 판결).

대상판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는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긴급한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 중 경찰관의 제지에 관한 부분은 범죄의 예방을 위한 경찰 행정상 즉시강제, 즉 눈앞의 급박한 경찰상 장해를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의무를 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의무를 명하는 방법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무불이행을 전제로 하지 않고 경찰이 직접 실력을 행사해 경찰상 필요한 상태를 실현하는 권력적 사실행위에 관한 근거조항이다. 행정상 즉시강제는 그 본질상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한도 내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므로, 위 조항에 의한 경찰관의 제지 조치 역시 그러한 조치가 불가피한 최소한도 내에서만 행사되도록 그 발동·행사 요건을 신중하고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그러한 해석·적용의 범위 내에서만 우리 헌법상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 보장 조항과 그 정신 및 해석 원칙에 합치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 법리를 설시하며, 이 사건 농성 및 기도회 당시의 평온한 상황에서 그 사용으로 특별한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볼 수 없는 방한용품을 빼앗고 참가자들에게 상해를 가한 경찰권 행사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의 즉시강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위법하다고 확인했다.

특히 대상판결은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대법원 2012.4.19. 선고 2010도6388 판결 등)를 이 사건에 적용해 이 사건 농성을 미신고집회로 보면서도 헌법상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았고,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곧바로 그에 대한 경찰의 공권력이 적법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 미신고집회 및 해산명령 불응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 범위 판단의 부당성

원고들이 청구한 위자료 금액은 각 100만원으로 경찰 공권력의 불법성, 침해된 법익의 중요성에 비해 상당한 소액에 불과함에도, 대상판결은 청구금액 중 많게는 10분의 9, 적게는 10분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액해 극히 낮은 정도의 위자료만을 인정했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농성이 미신고집회라며 경찰이 이에 대해 수차례 해산명령을 한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위자료 산정에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있었던 시점은 경찰의 상황보고 및 동영상 증거에 의하더라도 2016년 3월23일 밤 10시께부터 다음날 새벽에 이르는 때인데, 당시에는 원고들을 비롯해 10여명 정도의 소규모 인원이 고인의 영정을 중심으로 가만히 앉거나 누워 모여 있을 뿐 달리 구호를 외치거나 피케팅을 하거나 발언을 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이 구체적인 판단 근거의 설시 없이 만연히 이를 미신고집회라고 본 것은 타당하지 않다.

게다가 설령 이 사건 농성을 집회로 평가하더라도, 대상판결이 이 사건 농성에 대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의 즉시강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근거들을 고려할 때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대법원 2012.4.19. 선고 2010도6388 판결)라는 해산명령 요건 역시 충족할 수 없다. 즉 이 사건 농성에 대한 해산명령의 적법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인데, 결국 대상판결은 위법한 해산명령에 불응한 점을 위자료 감액 근거로 삼은 결론에 이른 바 이는 부당한 판단이다(위 해산명령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20조2항에 의한 해산명령불응죄가 성립되는 점과 비교해 봐도 대상판결은 명백히 부당하다).

또한 대상판결은 기도회 참가자의 위자료 청구에 대해서도 10분의 5에 해당하는 금액에 한해 인정했다. 그러나 향린교회는 부활주일의 공식 예배 중 하나로 이 사건 농성장에서 기도회를 계획한 것인데, 경찰은 평온하게 예배준비를 하고 있던 성직자와 교인들에게 기습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해 예배물품과 성직자의 소지품을 손괴하고 교인에게 상해를 가했다. 이 사건 기도회의 경우 미신고집회 및 해산명령 불응에 대한 사실인정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오인의 잘못이 있다.

3. 결론

대법원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6조의 즉시강제의 요건에 대해 수년 전부터 대법원 2008.11.13. 선고 2007도9794 판결 등에서 일관되게 설시하는 바, 대상판결은 이를 적용해 법적 근거 없는 경찰 직무집행의 위법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조금도 새로울 것 없는 위 법리가, 현실에서 경찰 공권력 행사의 한계로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대상판결은 침해된 법익의 내용 및 중요성, 공권력 행사의 불법성, 재발을 방지하고 예방할 필요성을 모두 고려했다면서 국가가 각 원고에게 10만원 내지 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고들은 경찰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인해 재산권, 일반적 행동자유권, 건강권, 종교적 행위의 자유 등이 침해됐다. 상해죄·재물손괴죄·예배방해죄 등을 넉넉히 구성하는 이 사건 물리력이 단순히 사인에 의해 행사된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엄격하게 법에 근거해야 하는 경찰 공권력에 의해 행사된 것이라는 점이 충분히 고려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한계를 넘어선 공권력 행사의 무게는 이토록 가볍게 판단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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