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촛불 1년,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본대회를 마치고 종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차벽이 사라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선 사람들은 더 멀리 넓게 봤다. 어떤 위치에서도 청와대 뒤 북악산 자락이 훤했다. 광화문광장이 또다시 촛불로 일렁였다. 1년 전 어두웠던 표정은 촛불처럼 환해져 있었다. 무대와 광장 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말은 “촛불은 계속돼야 한다”거나 “적폐청산은 이제부터”로 마무리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기록기념위원회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 1주년 대회’를 열었다.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주최측 추산 5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정권교체 주역, 다시 광장으로=공식행사 시각인 오후 6시를 앞두고 무대 위 대형스크린에서 지난 연말·연초 전국을 밝힌 ‘촛불’을 기념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촛불은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처음으로 타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연설문을 최순실이 고쳐 왔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첫 주말이었다. 시민 5만여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퇴진하라”고 소리 높였다. 참가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6차 집회에는 232만여명으로 헌정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모두 23차례 집회가 열렸다. 연인원 1천700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3월10일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시민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면서 촛불 1주년 대회 막이 올랐다. 정강자 기록기념위 공동대표는 “퇴진행동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기에 해산을 선언했지만 ‘새 정부 출범은 촛불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을 남겼다”며 “기념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져 안타깝지만 촛불을 밝혀 온 집단지성이 논란을 전화위복 계기로 만들어 촛불 정신을 계승·발전시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는 '촛불파티 2017'이 열렸다. 박석운 공동대표는 이와 관련해 “한국 사회 대개혁은 박근혜·이명박 정권이 쌓아 놓은 적폐 청산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뒤집혀진 민주주의 시계를 제자리로 되돌리려면 또다시 촛불시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진짜 적폐청산은 이명박 구속"=많은 화제를 낳았던 시민 자유발언도 재현됐다. 지난해 5차 촛불집회 때 자유발언자로 나서 “가훈을 하야만사성으로 정했다”고 했던 홍준의씨 가족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홍씨는 “이제야 가훈을 하야만사성에서 가화만사성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아들 성흠(14)군은 “부모님들이 뉴스를 보실 때 화를 안 내는 것을 보면 세상이 좀 바뀐 것 같다”고 전했다.

그동안 집회에서 촛불을 나눠 주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중학교 2학년생 강지효양과 김지은양도 이날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1년 전 ‘그래 봐야 세상이 변해?’라는 말을 듣고 힘들었지만 오기로 참여했고,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며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를 바꾸는 순간을 경험한 것은 잊지 못할 선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적폐청산 과제를 언급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국회를 바꾸는 것이 모든 개혁의 출발점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권고한 사안인 만큼 시민들의 연대와 관심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수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처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군과 국가정보원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자원외교로 1년 국가예산에 맞먹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낭비했다”며 “적폐청산 최우선 과제는 다스 소유자인 이 전 대통령을 처벌하고 구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다시는 세월호 참사 같은 국가에 의한 억울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며 “적폐세력으로 인해 중단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2기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발언과 발언 사이는 구호와 음악이 메웠다. 참가자들은 “촛불은 계속된다” “적폐를 청산하라”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같은 구호를 외쳤다.

가수 이상은·전인권·권진원씨가 무대에 올랐다. 일제히 촛불을 끄는 소등 퍼포먼스와 촛불 파도타기가 이어졌다. 기록기념위는 내년 3월10일까지 촛불백서를 발간하고 시민토론회·국제토론회를 이어 갈 방침이다. 광화문광장에 촛불혁명을 상징·기념하는 구조물도 제작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비정규직이 비정상인 나라로 가자"=민주노총은 대회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함께 가자, 2017년 촛불 1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노동자 4천여명이 서울로 모였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이주학(33)씨도 그중 한 명이다. 이씨는 한국지엠 협력업체에서 9년째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다.

“회사가 비정규직도 둘로 나눠 장기직만 정규직화한다네요. 대법원이 창원공장 비정규직은 정규직이라고 두 번이나 판결을 내렸는데도 그럽니다. 한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의 5분의 2를 약간 넘는 월급을 받아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회장 오른쪽에는 한 대의 레미콘 차량과 두 대의 덤프트럭이 눈에 띄었다. “건설기계 조종사도 노동자다”라는 현수막이 달려 있다. 15톤 덤프트럭을 몰고 대회에 참석한 배재순(59)씨. 그는 경기도 남앙주에서 20년 이상 덤프트럭을 몰고 있다. 배씨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건설현장에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장이랍니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네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 범위를 확장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해 준다고는 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해 주겠어요? 계속 싸워야죠.”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대회사에서 “비정규직이 일상인 나라를 비정규직이 비정상인 나라로 바꿔야 한다”며 “비정규직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투쟁을 외롭게 만든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오늘의 슬로건인 '함께 가자'를 되새기며 말이 아닌 실천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 쟁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최저임금 회피 꼼수 중단을 결의했다. 세종대로사거리와 종각역·조계사를 거쳐 열린시민마당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유도선을 벗어나지 않고 시민들을 보호했다. 참가자들은 행진 후 '촛불 1주년 대회'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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