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동아일보는 26일자 30면에 유럽 재생에너지 정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전면에 걸쳐 소개했다. ‘EU 재생에너지 정책 현장을 가다’라는 문패를 단 이 기사는 기자가 벨기에 브뤼셀까지 가서 썼다. 기사는 <2030년 유럽 재생에너지 비율 45% 눈앞>이란 큰 제목을 달고 ‘제로 에너지 빌딩 기술 적용 의무’나 ‘새 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투자’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벨기에 브뤼셀 환경보호국을 찾아가 2019년부터 모든 공공기관 건물, 2021년부터 모든 일반건물에 ‘제로 에너지 빌딩 기술’을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벨기에 정부의 강력한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소개했다.

스웨덴은 벌써 재생에너지 비율이 49%에 다다랐고 핀란드는 38%, 덴마크는 30% 수준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가 화석연료와 탄소소비 억제를 논의하는 기후변화협약 회의 유치까지 들먹이며 에너지 전환을 내걸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말뿐인 구호에 그쳤던 게 속속 확인된다. 오히려 화석연료보다 더 무서운 원전 수출에만 열을 올렸던 게 지난 10년의 정부 정책이었다.

화력발전은 물론이고 원전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밀하게 지으려 한 정부 정책에 언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늘리려 할 때마다 우리 언론은 채산성을 이유로 손쉬운 원전 증설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대표적인 신문이 유럽까지 가서 이런 보도를 하는 게 황당하다. 동아일보 기자는 벨기에에 있는 주유럽연합(EU) 대사관 최지영 상무관까지 만나 “현재 EU 발전투자의 85%가 재생에너지 분야에 집중돼 있을 정도”라는 답변을 천연덕스럽게 받아 적었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권고 결정을 앞두고 동아일보를 비롯한 한국 보수신문들이 보였던 태도를 생각하면 이런 기사는 생뚱맞다.

보수언론은 공론화위와 시민참여단을 향해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해 논의 중간에는 “전기료, 탈원전-탈석탄 정책 계속 땐 2030년 18% 오를 것”(동아일보 9월29일자)이라고 겁박했다. 정작 지난 20일 시민참여단이 최종투표에서 59.5%로 공사 재개에 손을 들어주자 동아일보는 23일자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국익 위한 ‘공약 철회’ 주저 말라>며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대통령 공약 때문에 투표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력까지 동원한 알박기였다.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공론화위 발표 다음날 한겨레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신고리 재개하지만 ‘탈핵 길’ 넓혔다>고 공론화위를 칭찬하면서 ‘숙의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같은날 4면에도 <정부 “에너지정책 전환 흔들림 없어” … 탈원전·탈석탄 속도> <“양쪽 모두가 승복할 절묘한 결론”>으로 칭찬 일색이었다. 6면에는 <‘작은 대한민국’으로 불릴 ‘현자’ 471명이 치유와 위로 큰 선물>이라는 제목의 전면기사도 실었다.

사실 한겨레가 ‘현자 471명’으로 호명했던 시민참여단은 대부분 신고리 5·6호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지난달 16일 2차 조사 때 충남 천안에 모인 시민참여단의 70%가 신고리 위치도 몰랐다. 최종투표 때도 30%의 시민참여단이 신고리 위치를 몰랐다. 이것만 봐도 신고리 주변 부산·울산·경남의 382만명 시민들 입장과 처지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볼 수 없다.

반면 경향신문은 23일자 3면에 공론화위의 성과와 한계를 <‘민주적 정책 결정’ 명분에 묻혀 버린 ‘환경공약 파기’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핵심공약을 손쉽게 털어 내고도 책임지지 않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같은 지면에 <‘기울어진 운동장’서 기계적 중립만> 내건 채 침묵했던 더불어민주당의 비겁한 태도를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칭찬 일색이던 한겨레신문과 많이 달랐다. 여러 어려운 여건에도 경향신문의 용기 있는 지면이 돋보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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