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자 권리를 찾기 위해 제일 먼저 목소리를 냈던 집단 중 하나가 특수고용 노동자였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 보험모집인과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노조를 조직했고, 2000년에는 재능교육 학습지교사가 노조 결성 후 파업투쟁을 통해 설립신고증과 단체협약을 쟁취했다. 2001년 레미콘 차주 겸 기사가 주축이 된 전국건설운송노조 결성과 파업, 2003년 전국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 파업과 노정 합의, 2004년 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 결성과 파업이 잇따랐다.

2000년대 초반 특수고용 노조의 조직과 투쟁에 대해 정부·법원 태도는 유보적이었다. 특수고용 노조는 설립신고증을 받기도 했지만 정부가 앞장서 이들의 단체행동을 억압했다. 2001년 파업 중이던 건설운송노조 조합원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 2003년 8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탄압과 그 직후 이뤄진 업무개시명령제 입법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부 중반을 지나면서 노조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수고용 노조들은 오랜 투쟁 끝에 단체협약을 쟁취했지만, 사용자들은 법원으로 달려가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확인을 받아 왔다. 사법부와 노동위원회 태도가 특수고용 노조에 부정적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류에 정점을 찍은 것은,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청부입법안이라 할 김진표 의원의 특별법안이었다. 이는 “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하며, 노무를 제공함에 있어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규정하고 이들에게 일부 보호를 적용하되, 노동 3권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안은 2007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조항으로 일부 입법화됐고, 18대 국회에서는 ‘김상희 의원안’으로 이름을 바꿔 옛 민주당의 당론법안이 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법 사각지대로 내몰린 특수고용 노조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정부·법원의 비호 속에 사용자들은 특수고용 노조에 대한 단체협약 파기, 조합원 해고와 부당노동행위, 노동조건 개악을 거리낌 없이 진행했다. 그럼에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조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새로운 직종의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싸움을 이어 나갔다. 이런 배경 속에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국민권익위원회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권고를 거듭 내놓았다. 보수적인 대법원마저도 2014년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조할 권리 보장에 대한 정부 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대통령이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롯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인권위 권고수용 방침을 밝혀 이러한 기대가 더욱 커지게 됐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밝힌 특수고용직 보호방안 마련 계획을 살펴보면, 기대가 우려로 바뀌게 된다.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방안으로 또다시 ‘특별법 제정’을 거론하고, 하나의 사업주에게 전속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노동기본권 보장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궤적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특수고용직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하나의 사업주에게 전속되지 못한 채 불안정한 노동관계를 가지고 있다. 단시간·일용직과 파견·호출노동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나의 사업주에게 안정적으로 고용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여러 일터를 뛰어다니고 있다. 전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부정하게 된다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불안정한 노동자들 역시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비정규직 보호는 고사하고 현재의 노동권마저 후퇴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도를 촛불에 빚진 정부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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