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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살리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으로 폭발했던 때로부터 한 세대를 지나왔다. 20대 청년 노동자는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50대 장년 노동자가 됐다.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서, 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서 단결해 일제히 행동했던 87년 7·8·9월의 노동자대투쟁이었다. 그날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희망이었다.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의 권리를 쟁취하고 노동자를 세상의 주인으로 세워 줄 희망의 무기였다. 당시 기세는 분명히 노동조합으로 거대하게 단결해서 대한민국의 법전과 단체협약에 높은 수준의 권리를 새겨 넣고 노동자도 사용자 자본과 다름없이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것이라고 예측하기에 충분했다. 그 기세대로였다면 오늘, 우리 노동자들은 노동자대투쟁을 이 나라 노동운동의 정점으로 추억할 일도 없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본격적인 출발이라고 기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위대한 노동자의 투쟁이라고 추억하고 있다.

2.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이라고 국민은 예측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지난달 21일 한국노동연구원은 ‘한국 노동체제의 진단과 과제’ 세미나를 열고서 이 같은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89년·2007년·2010년에 이어 네 번째로 실시했다는데 국내 노동조합 영향력이 5점 만점에 2007년에는 3.3점, 2010년에는 3.2점이던 것이 이번에는 2.9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노조 영향력이 앞으로 커질 것이라고 답한 비율 역시 26.3%로 2010년(40%)보다 13.7%포인트 감소했단다. 국민은 지금도 노조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5.5%로 조사됐다고 발표됐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국민 일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들 중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에 우리 노동자들에게 희망일 수 있었던 노동조합이 오늘은 그렇지 않게 됐다는 것인가. 노조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이 나라,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크게 줄었고 더 줄 것이라니 30년 전에 꿈꿨던, 노동의 권리를 쟁취하고 노동자도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희망의 노동조합이 더는 아닌 게 분명해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해마다 조사해서 발표해 온 노조 조직률 추이를 보면, 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인 89년에 19.8%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 추세를 보이며 2015년 말 현재는 10.2%를 보이고 있다. 노조 조직률로만 보자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자 5명 중 1명이 노조 조합원이던 것이 이제는 10명 중 1명만 조합원인 것이다. 여전히 노조가 필요하다고 85.5%가 인식하고 있대도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에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이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크지 않고 그마저도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예측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난겨울 촛불집회를 주도한 주요단체에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이 적극 참여해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해도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은 이렇게 참담한 지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조가 하는 말을 두고서가 아니다.

3.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11일 “노동운동의 사회연대를 지원하고 조직률 30%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6월 항쟁 30주년을 맞는 올해는 7·8·9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지만 대부분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에 참여할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그나마 노동조합 활동을 하려 해도 업무방해와 손해배상으로 패가망신을 각오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노조 결성을 막는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한 의지로 처벌하겠다’고 말했으니 이제 대통령이 국민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해 달라’고 말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노동자를 대변해 온 정당의 대표가 국회에서 대표연설로 노조 조직률을 높이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정미 대표의 연설 취지는 비정규 노동자가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고 지원해서 노조 조직률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거기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국민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라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달라고 국민에게 말해도 되는 것인지 그 법적 논란을 떠나서 나는 어째서 정의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인지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래도 뭐 그것이 노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 나라 국민에게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노조 가입신청서를 쓰도록 할 수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해 보고 있으니 완전히 엉뚱한 생각은 아닌 것인가. 이러한 이정미 대표의 국회 연설이 있기 전인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노조 조직률을 높여 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저의 지난 대선공약이기도 했다”며 “정부도 노조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상과 같은 대통령과 정당 대표의 말을 듣고 있자면, 오늘은 노동조합 살리기에 나선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노동자가 노조하기에 좋은 날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까지도 포함해 통 크게 단결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

4. 이대로라면, 지금대로라면 노조 조직률이 치솟게 되고 그래서 89년의 정점도 넘어설 것인가. 적어도 노조 조직과 가입을 방해하는 사용자 자본을 편드는 권력이 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이제 조만간 노조 조직률이 20%로 증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도 되는가. 그런데 말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희망이었는데, 지금도 그렇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까.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은 희망은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없다. 더는 가슴 벅찬 희망이 아니다. 노동조합을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권리와 이해를 지켜 줄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자신이 입을 손해는 얼마인지를 구체적으로 타산하고서 이득이 되면 가입하는 단결체로 바라보고 있다. 꿈꾸지 않는다. 아무리 주변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로보고 그런 그들이 필요한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활동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이 계속해서 하락 추세였던 것이 사용자 자본과 권력의 탄압 때문은 아니다. 그랬다면 그 탄압의 정도에 따라 노조 조직률 추이가 반비례했어야 했다. 그러나 89년 이후 계속해서 하락해 왔다. 김영삼 정권에서 크게 하락했고, 김대중 정권에서 더욱 하락했다. 노무현 정권이던 2004년, 노조 조직률이 10%로 주저앉은 이래 더는 변화가 의미 없을 정도로 그대로 정체돼 있다. 그러니 아무리 대통령과 정당 대표가 나서 노조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고, 노조 조직을 방해하는 사용자를 규제하겠다고 법과 제도 정비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 살리기는 되지 않는다.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도록 불이익보다 많은 노동의 권리를 쟁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당연히 가입해서 활동해야 할 노동자단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노동조합이어야만 보장해 주는 노동의 권리를 조합원인 노동자에게 안겨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임금·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에서 각종 복리후생·복무규율, 나아가 이른바 인사경영에 이르기까지 사업장에서 사용자에 맞서 노동조합이 쟁취해 낸 노동의 권리는 이 나라에서는 내세울 것이 많지 않다. 적어도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걸 보장받기 위해서 노조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노동조합 살리기는 노동조합을 살리겠다고 천명하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인 노동자를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하는 협약 등을 통해 살릴 수 있을 때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 살리기는 실현될 수 있다. 노동조합 살리기,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단결체인 노동조합이 스스로 할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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