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흘렀다. 당시 20%에 육박해 최고치를 찍었던 노조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반토막 났다. 소강상태에 빠진 노동운동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광범위한 현장토론으로 운동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운동 세대교체를 위해 대표권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개최한 ‘골리앗, 서른 잔치는 끝났다(노조 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노동운동 변화)’ 토론회에서다.

◇"광범위한 현장토론으로 운동방향 재설정"=이원보 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이 '87년 노동자 대투쟁 30년,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발제했다. 이원보 이사장은 “민주노조 진영 구축”을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이룬 핵심 성과로 봤다. 그해 12월 마산창원지역노조총연합 창립을 시작으로 제조업 분야에서만 2년간 11개 지역별노조협의회가 생겼다. 같은 기간 사무금융노조·연맹 등 11개 업종별노조협의체(연맹)가 탄생했다. 바람을 타면서 89년 노조 조직률은 19.8%를 기록했다.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97년 외환위기가 결정타였다. 기업은 줄도산했고 실업자는 넘쳐 났다. 노동운동도 침체를 맞았다.

이 이사장은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요구한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고, 양대 노총 동의하에 ‘IMF 체제 극복을 위한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했다”며 “민주노총이 근로자 파견 법제화 등을 담은 사회협약안을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부결시켰지만 98년 2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서 노동현장에선 정리해고 광풍이 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20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98년 11% 수준으로 떨어진 노조 조직률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이 이사장은 “노동운동이란 침체와 고양, 패배와 승리를 거듭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인정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 시도 등이 과거와 다른 노동운동의 새로운 양태라고 짚었다.

그는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는 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제대로 제시하는 일은 위기 극복을 위해 가정 먼저 살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 단위별로 전략위원회나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광범위한 현장토론과 대중토의를 통해 전략을 정립하고 구체적인 실천방향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표권 재구성해 노동운동 세대교체"=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간 울산지역 노동운동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분석한 발표도 흥미를 끌었다. 유형근 부산대 교수(일반사회교육)는 울산 노동운동 주체를 ‘87년 세대’와 ‘98년 세대’로 구분했다.

유 교수는 “87년 세대는 여전히 강력한 조직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의 집합행위 성향은 이제 감소했거나 대체로 기득권을 방어하는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며 “98년 세대의 노조운동은 제도적 제약을 넘어서려는 전투적 성향을 보이지만 이를 성과로 이어 가게 하는 조직적 자원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각급 노조의 내부 의사결정을 보면 여전히 87년 세대가 핵심"이라며 "향후 새로운 노조운동이 성장해 노동운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저항 레퍼토리 개발·전파와 함께 노조운동 내부에서의 대표권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금숙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은 “80년대를 지나면서 사무직 여성노동운동이 형성됐는데 이를 통해 금융권 여행원제 폐지나 남녀 차별폐지 투쟁을 통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기여했다”며 “그런데 노동자 대투쟁 30년을 평가하는 어떤 자리에도 여성노동자 투쟁 역사나 젠더 관점의 노동운동 평가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은 “공공부문 상당수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를 지원하면 비정규직 노조가 안착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민간부문도 하후상박 임금, 동일노동 동일임금 연대와 동시에 정규직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주체적인 노조 결성을 지원한다면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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