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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신의성실 원칙’ 띄우기

기아자동차 노사의 통상임금 소송 1막이 끝났다.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2011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논란이 일었던 신의성실 원칙(신의칙) 적용을 배제했다. 노조측은 사실상 승소한 것으로 여긴 반면 기아차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송 제기 6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지만 2심과 3심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다.

당초 기아차측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하면 경영상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동차업계 일각에선 생산설비 해외이전까지 거론할 정도였다. 일부 신문·방송은 일제히 사용자측 주장을 부각하고 신의칙 적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재판부가 이를 배척했는데도 경영계와 일부 언론은 여전히 신의칙 띄우기에 몰두한다.

신의칙은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등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통상임금 판단기준과 관련해 고정성·일률성·정기성 요건을 제시하면서 신의칙 적용을 병렬하는 판결을 내렸다. 신의칙은 사인 간의 계약을 규정한 민법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두 당사자가 명시적 합의를 하거나 묵시적 관행이 있다면 이를 존중하자는 원리다.

통상임금 소송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됐다. 노사가 단체협약을 체결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범위에서 제외하거나, 그간 관행으로 이를 수용했다면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져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거나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질 경우도 포함한다.

그간 법원은 두 가지 요건을 바탕으로 신의칙 적용 여부를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을 근간으로 하는 통상임금 판단기준과 민법 원리인 신의칙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전자는 명료한 기준인 반면 후자는 재판부 해석의 영역이다.

재판부마다 판결이 엇갈렸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신의칙 적용 여부가 달랐다. 2014년 부산광역시 소속 환경미화원, 같은해 고용노동부 직업상담원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판부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용자측 주장은 배척했다. 반면 지난해 만도 통상임금 소송에서 재판부는 신의칙을 적용해 사용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노동자의 소급분 청구가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내용이다.

1심과 2심 판결이 엇갈린 사건도 여럿 있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의 경우 1심에선 노동자, 2심에선 사용자가 승소했다. 2심 재판부는 조선업종 불황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을 고려해 신의칙을 적용했다. 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1심과 2심 판결이 달랐다.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재판부도 있었다. 지난해 ㈜다스 통상임금 소송에서 2심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에 속하는 정기상여금을 제외하는 합의를 했더라도 그 합의는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노사합의나 묵시적 관행, 소급분 지급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에 근거한 신의칙 적용을 배척한 판결이었다. 기아차 소송 재판부 판결 내용도 같은 맥락이다.

신의칙 적용이 기관에 따라, 재판부에 따라 달랐다. 신의칙 적용 여부가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에 달렸기에 일관성을 갖추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노사합의나 묵시적 관행을 인정해야 하는 아이러니까지 발생한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민간기업 통상임금 소송에 신의칙을 잇따라 적용했다. 기아차 소송은 이런 추세를 뒤집는 판결이었다. 기아차 사건 재판부는 “원고(노조측)는 근로기준법으로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피고(사측)가 누렸다”며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위태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 어느 정도여야 그런 요건을 충족하는지 알 수 없어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아차 1심 판결은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통상임금 범위 확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의칙 적용을 둘러싼 혼선을 해소하기 위해 판단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의 기준과 범위’에 관한 것이다. 법원 스스로 신의칙 적용을 둘러싼 혼란을 빠른 시일 내에 해소해야 한다.

경영계가 신의칙 적용을 과도하게 띄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을 형해화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주요 언론이 신의칙을 부각하는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판결 맥락조차 부정하는 그런 주장은 자제했으면 한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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