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25일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1심 판결에 쏠렸다. 법원은 450억원이 넘는 뇌물공여 혐의 중 204억원에 달하는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지원 부분을 “대통령의 적극적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대가성이 없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징역 5년'이라는 양형기준을 벗어난 최저형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 하루 전인 24일 부산고등법원은 2010년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 파업을 지원한 4명의 노동자에게 "현대차에 2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항소심 판결을 내렸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2005년 해고된 최병승 조합원 사건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원심 파기환송을 선고했다. 이 판결로 2004년부터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주장해 왔던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의 정당성이 확인됐고, 대법원 판결 이후 지회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현대차 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현대차 사측은 지회의 교섭요구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조합원이 소속된 사내하청업체 폐업조치를 단행했고, 이에 격분한 조합원들이 2010년 11월15일부터 25일간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이 파업에 대해서만 현대차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220억원을 넘는다. 이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을 하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교섭과 투쟁을 이어 나가자, 사측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거나 지회를 탈퇴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취하해 주는 방식으로 투쟁을 계속하려는 조합원들을 압박했다. 결국 끝까지 사측을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노동자 5명에 대해 90억원의 손해배상 인용 판결(부산고법 2017. 1. 25. 2014나1119 판결)이, 최병승 외 3명에 대해 20억원의 손해배상 인용 판결(부산고법 2017. 8. 24. 2013나9475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번 판결의 피고인 4명을 살펴보면, 불법파견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이자 2010년 파업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이던 최병승, 당시 금속노조 단체교섭국장이던 박점규, 당시 비정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서 대체인력 저지를 함께하는 등 지원했던 정규직 현장 간부가 포함돼 있다. 말하자면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이 파견법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당사자이자 상급단체 간부로서 비정규직 투쟁을 지원하는 것이 임무인 사람들과, 현대차 사측의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면서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한 정규직 노조간부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고통을 주겠다는 현대차 의지가 법원에서 인용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2004년 9월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공장의 사내하청 전원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내리고,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재까지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현대차 사측은 누구도 처벌을 받은 바 없다.

불법파견이 이뤄지고 있을 때 노동부는 해당 사업체의 노동자파견을 폐쇄할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 불법파견에서 권한을 이행한 적이 없다. 검찰은 2006년과 2007년 계속 파견법 위반에 관해 현대차 사측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했을 뿐만 아니라 2010년 금속노조 고발과 2013년 국민고발단 고발에 대해 모두 '혐의 없음' 내지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이 삼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액수인 128억원을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지원했음이 밝혀졌지만,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법을 우롱하는 재벌 사용자는 처벌받지 않지만, 법에 따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운 노동자들은 해고에 징역살이에 이제 평생을 벌어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손해배상을 홀로이 감당해야 한다. 올해 초 90억원의 손해배상을 맞은 5명은 1억원에 가까운 상고심 인지대를 감당할 수 없어 상고를 포기했다. 이번에 20억원의 손해배상을 맞은 4명 역시 1천500만원의 인지대를 9월11일까지 마련해야만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의리와 원칙을 지킨 노동자들이 재판비용이 없어 자본과 정부·법원의 부당한 탄압을 홀로 감내하도록 둘 수 없어, 이들의 소송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제안한다. 비정규직없는세상 계좌(KB국민은행 533302-01-358495, 예금주 오진호)로 이들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 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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