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여울 공인노무사(이산노동법률사무소)

사무실에 걸려 오는 상담전화, 길거리 노동상담을 하다 보면 임금과 관련한 사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주휴수당이나 가산수당을 받지 못했다거나,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하니 월급에 포함해 지급했다며 퇴직금을 주지 않는 경우,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월급을 다음달에 주겠다고 하는 경우 등 사례가 매우 다양하다. 그럴 때마다 노동청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시면 된다고 답변하지만 근래 항상 덧붙이는 말이 있다. "진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지는 않아요."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노동은 노동자 인격실현을 위한 도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노동의 기본적인 목적은 바로 임금이다. 노동자는 임금을 바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도 이러한 점을 당연히 전제해 "임금은 통화로 제 날짜에 전액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해야 한다"고 하여 임금지급에 관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근로기준법 43조).

임금체불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노동청 근로감독관 집무규정도 마찬가지다. 동 규정 42조1항 및 3항에 따르면 임금체불 진정은 원칙적으로 접수일로부터 2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면 1회에 한해 연장해 최대 50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 여타 고소·고발 사건 처리기간이 원칙적으로 접수일로부터 2개월 이내, 최대 4개월 이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금체불 진정사건에 대해서는 보다 빠른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음에도 실무에서 위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최초 출석일을 접수일로부터 한 달이 경과한 시점에 잡으니 원칙적인 처리기간은 애초 지켜질 수가 없다. 두 당사자 간 출석일 사이에 일부 공백을 두니 중간에 합의하지 않은 이상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최소 3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한 번의 출석조사 이후 제대로 된 조사 없이 6개월, 1년 가까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업주가 연락이 안 된다고 하면서 사업주 명의 휴대전화로 전화하는 것 외에 다른 조치는 취해 보지도 않고 무기한 조사를 연기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실제로 사건이 복잡해 50일 안에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집무규정에는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처리기간 내 처리가 불가능하다면 진정인의 동의를 얻어 처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인에게 동의를 얻는 경우는 만무하다. 양해를 구하는 표시를 하는 것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진정할 때 법원 민사소송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것이 행정구제의 본질이자 목표다. 임금체불 진정 처리기간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있다는 것은 노동청이 행정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해당 사실은 단순히 집무규정상 처리기간이 준수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넘어, 이미 제 날짜에 정해진 액수의 임금을 지급받아야 할 권리가 침해돼 일상생활에 위협을 받고 있는 노동자의 불안정한 지위를 노동청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매년 임금체불 진정 건수와 체불액이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조4천200억원이 넘는 임금체불로 33만명의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노동자는 “회사에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월급만 제때 주면 좋겠어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임금체불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 보니 임금체불 진정은 근로감독관에게 늘 존재하는 사소하고도 가벼운 사건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해당 사건 처리가 늦어질수록 노동자 개인의 생활이 더더욱 불안정해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노동의 대가인 임금으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부디 노동청이 행정구제로서 제 기능을 발휘해 노동자의 침해된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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