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독일 함부르크에서 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20개 나라 정상, 솔베르그 노르웨이 수상을 비롯한 특별 초청 8개 나라 정상, 그리고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을 비롯한 9개 국제기구 수장이 모였다. 회의를 마치며 G20 국가와 국제기구 정상들은 “서로 연결된 세계를 만들자(Shaping an interconnected world)”는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G20의 목표로 “강력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 잡힌 포용적인 성장”을 내세우면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안정성을 구축하기 위해 “지구 공동체가 맞닥뜨린 테러리즘과 피난·빈곤, 기아 및 건강 위협, 일자리 창출,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성차별을 포함한 불평등 같은 공통의 도전들”에 함께 대응한다고 결의를 다졌다. 나아가 경제적인 탄력성 회복, 지속가능성 개선, 책임성 강화라는 세 가지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마련했다.

“세계화의 혜택을 공유하자”라는 부제를 단 행동계획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지속가능한 지구 공급사슬”에 관한 부분이다. 선언문은 지구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s)을 “일자리 창출과 균형 잡힌 경제성장의 중요한 원천”으로 규정하면서 “포용적이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달성하는 데 여러 가지 도전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공급사슬을 성취하려면 노동·사회·환경 기준과 인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준에 맞춰 실천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선언문은 <유엔 기업 활동과 인권 지도 원칙> <ILO 다국적기업과 사회정책 원칙 3자 선언>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G20 국가 정상들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비롯한 국제기구 수장들은 ILO가 직업으로 인한 사망·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인 <직업재해 사망 제로 기금, Vision Zero Fund>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아동노동·강제노동·인신매매 등 모든 형태의 현대판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기업 책임성을 강화해 영업활동이 적법한 절차(due diligence)를 준수하면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국가 정책을 수립하기”로 약속했다.

G20 지도자들은 “사회적 대화와 공정하고 괜찮은 임금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지구 공급사슬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공급사슬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분쟁을 다루기 위한 “비사법적 수단(non-judicial mechanism)”으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국가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의 역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국적기업들이 국제노동조합들과 국제기본협약(international framework agreements)을 체결하도록 촉구하기로 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분쟁 문제를 처리하는 실무기구인 NCP는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설치돼 있다. 한국 NCP는 미국과 일본의 NCP와 더불어 최악의 NCP로 평가되며 국제적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NCP 업무 처리에서 전문성과 실무력이 떨어지다 보니, NCP의 사업과 활동을 대한상사중재원으로 외주화해 놓았다.

더욱 웃기는 일은 외주화 당시 산자부로 법인이 등록돼 있던 대한상사중재원이 지금은 그 등록 관할이 법무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관료주의 뺑뺑이 대상으로 전락한 한국 NCP는 국민 혈세만 낭비하면서 껍데기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비사법적 기구인 NCP의 활동과 사업을 행정부 안에서 가장 사법적인 기관인 법무부에 등록된 일개 법인이 외주로 대행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의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노동조합운동은 실무자 수준의 회의만 주야장천 이어 갈 뿐 NCP를 개혁하고 기능을 정상화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NCP 관장 부처를 노동부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문제의 대부분은 ‘제5장 노사관계 및 고용관계’와 관련한 것이다. NCP의 주요 목적은 분쟁의 사법화를 예방하는 데 있다. 신속한 분쟁 해결로 노동자가 겪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위원회와 근로감독 기능을 통괄하는 노동부의 역할과 궤를 같이한다. 해당 부서 감독하에 분쟁 조사는 근로감독관이 하고, 노동위원회나 근로감독관이 적극 나서 비사법적 해결을 조정한다. 노동부 안에서 국제협력을 담당하는 부서가 OECD와의 연락을 포함해 전체적인 조정(coordination) 역할을 맡으면 별다른 예산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NCP 활동의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필요한 사안은 환경부·외교부·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산자부·법무부에 협조를 구하면 된다. 지금은 껍데기만 남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 참여를 실질화해 사회적 대화 창구로서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함부르크 G20 선언문에 서명했는데, 선언 후속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특히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NCP 문제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청와대와 산자부와 노동부는 답할 의무가 있다. 한국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성명서 달랑 한 장 발표하는 것을 넘어 NCP의 구체적인 개혁을 위해 한발 나아갈 의무가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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