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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
   
▲ 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수많은 현상 중 하나는 바람이다. 아침저녁으로 부는 시원한 바람은 올 여름 더위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나뭇잎의 흔들림으로, 아이 손끝을 떠나 하늘을 나는 종이비행기의 자유로운 비행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도 느낀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이 만들어 온 변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위해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폐기했다. 최저임금은 역대 최고 인상금액으로 올랐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지됐고 청계천 시다들은 노동자로, 애국자로 호명됐다.

문재인 정부 100일의 하이라이트는 99일째를 맞은 지난 16일 세월호 유족들의 청와대 방문이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아이를 만나도 ‘너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기사와 대통령의 사과에 흐르는 눈물을 닦는 유족 모습이 담긴 뉴스 영상을 보며 필자 역시 눈가가 뜨거워졌다.

국회와 광화문광장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해야 했던 지난 3년. 그토록 만나 달라고 애원하고 빌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으리라.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많은 바람들이 남아 있다. 대형 여행사들의 갑질과 다단계 착취구조에 놓여 있는 박인규 관광통역안내 노동자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바란다. 그는 한국노총에 “우리 좀 살려 달라”고 말한다. 스물여섯에 들어와 밤잠 안 자고 키워 놓은 회사가 희대의 사기꾼 손에 풍비박산되는 모습을 본 천선옥 썬코어 노동자는 멀쩡한 기계들이 녹스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얘기한다. 2012년 파업 이후 부당한 사측 지시에 반발하다가 정직을 받고 비제작부서로 쫓겨났던 이영백 MBC 피디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다룬 기획이 경영진에 의해 묵살되자 항의하고 제작거부에 들어가 다시 대기발령을 받았다. 연장근무·주말특근을 줄이고 최저임금 수준인 임금을 인상하려고 노조를 만들었던 배태민 만도헬라 노동자는 두 달 넘게 파업을 하고 있지만 회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하청업체 계약을 해지해 사실상 그를 해고했다.

이들의 바람은 정상적인 사회 환경에서 노동을 하겠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요구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세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채 싸우고 있다.

필자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과 발걸음을 향해 주기를 바란다.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들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받도록 하겠다는 장관의 말을 실천으로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노동계 역시 바람만 가지고 하염없이 기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노조의 권리를 보호하는 정책을 전향적으로 펼쳐야 하겠지만 스스로 단합된 힘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며 “노조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노력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그리 말해서가 아니라 노동계는 더 많은 바람들을 조직하고 만들어야 한다. 바람이 만들어져 불어오는 곳, 그곳에 노동조합이 서 있어야 한다.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이은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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