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기사 김희원씨가 상자를 가득 안았다. 걸려 온 전화도 미룰 수는 없어 턱과 어깨로 받치고 통화했다. 정기훈 기자
계단 오를 일이 많다. 하루 평균 200층을 오간다고 김씨가 말했다. 가벼운 보냉 상자 안에는 무거운 냉동식품이 들었다. 정기훈 기자
김씨가 택배 상자를 분류한 뒤 트럭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허리 굽는 일이다. 정기훈 기자

“택밴데요. 지금 집에 계세요?”

턱까지 쌓아 올린 상자를 한아름 안고 걸어가던 사내가 목소리를 높인다. 손 대신 오른쪽 어깨를 올려 머리 사이에 끼듯 휴대전화를 잡고 걷는 뒷모습이 힘겹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희원(43·가명)씨다. 택배 차량을 골목 어귀에 세워 두고, 상자를 내려 근처 건물에 배달한 뒤 돌아오기를 여러 번. 희원씨의 손과 발이 바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1일 그와 함께했다. 희원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서울 주택가다. 단독주택과 빌라가 많아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많다.

이날 낮 기온은 32도를 웃돌았다. 쨍한 햇볕이 골목골목을 비췄다.

"탁탁탁탁!" 무거운 짐을 들고도 층계를 오르는 소리가 빨랐다. 1.5리터 생수 12개 들어 있는 상자 위에 또 다른 상자를 올려 등에 지고 건물 3층을 계단으로 올랐다. 3시간 동안 계단을 오르내렸다. “언젠가 계산해 보니까 하루 평균 200층을 오르내리더라고요.”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본사 지침 순차적으로 내려오는데 사용자 아니다?

희원씨는 배송을 하면서 수시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고객과 소통하고, CJ대한통운 회사앱으로 상품 바코드 스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가 휴대전화에서 확인하는 것은 또 있다. SNS 단체방이다. 본사 직원은 단체방에 대리점 소장과 운영자를 초대해 지점 터미널 운영과 본사 지침을 전달한다. 대리점 소장들은 본사에서 받은 내용을 택배기사들이 가입한 또 다른 SNS 단체방에 내보낸다. 본사 지침이 택배기사까지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구조다.

대리점 소장과 운영자에 따르면 본사 직원은 이날 "터미널 운영 관련 몇 가지 당부 및 부탁을 드린다"며 "레일 밑 상품 방치를 하지 말 것, 출차 전 전등소등 및 선풍기를 끌 것, 분류장·화장실에선 금연할 것" 같은 지침사항을 내려보냈다.

희원씨는 “택배기사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인데, 실제로는 본사 지침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 언제든 일감을 뺏길 수 있다는 불안이 있어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위에 계약해지를 당한 택배기사가 있다는 귀띔도 했다.

단체방에는 해당 구역 3개 대리점 고객만족도(CS) 점수가 공유된다. 역시 본사 직원이 올린 것이다. CS 항목은 △당일 집화 등록 상차율 △당일 회수율 △고객 불만 발생률 △미처리사유 등록률 등 10개다. 전일 대비 마이너스는 빨간색으로 적혀 있다.

단체방에서는 'GPS(위성항법장치) ON' 부진인원 명단도 확인할 수 있다. 'GPS ON'은 회사나 고객이 배송물품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 GPS를 켜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부진인원은 이를 지키지 못한 기사들이다.

희원씨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본사 직원이 진행하는 아침조회에 참석한다”며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맞지만 계약해지 위협 탓에 노동자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고, 휴가 가기도 힘들어

“기사님~. 시원한 물 좀 드세요.” 2년 넘게 같은 곳에서 택배를 하다 보니 눈에 익은 고객들이 생겼다. 땀범벅이 된 희원씨를 본 상가 주민들이 희원씨에게 음료를 권했다.

“여름휴가는 다녀오셨어요?” 쉬는 동안 그에게 물었다. 동료 6명이 돌아가며 업무를 맡아 주기로 하고, 지난주 토·일·월요일 3일간 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은 대리점에서 "특정 지역을 담당하라"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개인 사정에 따른 공백은 스스로 대체인력을 구해 해결해야 한다. 하루 이틀은 동료들과 상의하면 되지만 장시간 쉬어야 할 때는 대체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

택배기사는 개인 업무량이 적지 않다. 다른 사람 몫까지 처리하려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체인력(용차)을 고용하면 자신이 받던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택배기사는 아파도, 부모님 상을 당해도 쉬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파서 배송구역에 '구멍'이 나면 대리점은 다른 택배기사에게 해당 구역을 넘겨줘 버린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희원씨는 "그래도 아프면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택배기사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당 820원 받으며 250개씩 배달, 하루 13시간 일해

“평소에 비하면 오늘은 엄청 일찍 마칠 것 같네요.” 오후 4시쯤 희원씨가 반팔 옷소매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차량 뒤편 창고를 확인해 보니 남아 있는 택배상자가 몇 개 없다.

휴가철이어서 택배물량이 150개밖에 없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하루에 200개 정도를 배달한다. 지난달 업무량을 줄이기 전에는 하루 물량이 250개였다.

희원씨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루에 13시간을 일했다”며 “아침 7시에 집하장에 나가 택배 분류·상차작업을 하고, 오후에 배송업무·픽업업무까지 마치면 퇴근시간이 저녁 8시쯤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평균 10시간 정도는 일하는 것 같다”며 “퇴근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면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택배기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노동시간은 사용자에 매여 있지만 사업자등록을 한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더 많이 배송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 탓이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는 2천200원짜리 택배를 한 개 배달하면 820원의 수익을 얻는다. 이어 픽업기사가 440원, 나머지는 CJ대한통운이 챙긴다. 택배단가의 절반도 안 되는 수익에서 대리점이 또 수수료를 떼어 간다. 대리점 수수료는 10~25%다. 대리점마다 다르다. 희원씨는 지난달 기준으로 세금과 기름값 등을 빼고 350만원 정도를 벌었다. “한 달 급여가 어느 정도는 보장되는데, 시급으로 계산해 보니 최저임금보다 그다지 높지는 않더라고요.”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최저임금(6천30원)을 받는 노동자가 택배기사들과 같은 조건으로 일한다고 가정할 때 택배기사들은 최저임금 노동자보다 월 22만5천원을 더 받는 데 그쳤다.

택배노동자는 4대 보험 중 산재보험만 임의로 가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택배기사는 전체의 10%를 밑돈다. 의무가입이 시급해 보인다.

한편 국내 택배시장 점유율은 상위 5개 택배기업이 83%를 차지한다. CJ대한통운 시장점유율이 45%로 국내 1위다. 희원씨는 “회사마다 장단점이 있긴 한데 CJ대한통운 택배기사는 물량이 많아 전체 급여는 다른 회사 기사보다 조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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