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1970년 1월21일 화학노조 한국화이자분회 260여 조합원이 부당해고자 복직과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서울 성동구 광장동(지금은 광진구)의 한국화이자는 미국 화이자와 국내자본이 5대 5로 합작한 제약회사로 70년에 300명을 고용했다. 이 회사 노동자 14명은 노조를 만들어 서울시에서 설립필증(설립신고증)까지 받았다. 노조는 노동청에 행정지도를 요청하고 회사엔 단체협약 체결과 노사협의회 설치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동청은 “외국인 투자기업체 노조 설립이라 서울시가 교부한 필증은 무효고, 노동청 필증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외투기업법 시행령이 제정되지 않아 그때까지 노조 결성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박정희 정부가 70년 1월1일자로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만 공포하고 미처 시행령을 만들지 못했다.

회사는 노동청 지시에 큰 힘을 얻어 노조탄압에 들어갔다. 회사는 그해 2월20일 5개 항의 입장을 발표했다. 첫째 공산당 같은 노조를 조직했고, 둘째 감히 단체교섭을 요청했고, 셋째 노조 간판을 임의로 달았고, 넷째 회사 게시판을 무단 사용했고, 다섯째 노조의 선전 유인물을 불법 배부했다는 거다. 회사는 이런 이유로 분회장을 해고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그땐 그랬다.

다음날(2월21일) 아침 분회장이 출근하자 공장장이 막아서면서 “당신은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격분한 조합원 300여명이 순식간에 3층 구내식당에 모여 분회장 복직과 ‘공산당 노조’ 발언을 사과하고 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노동청 외자담당관과 노정국장이 조정에 나섰지만 회사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날 밤 10시께 기동경찰까지 출동해 여성조합원들을 강제로 연행하려 하자 조합원들이 막아 냈다. 농성 사흘째인 같은달 23일 이재숙 등 여성조합원 6명이 실신했다. 격분한 조합원들은 전원 옥상으로 올라가 대대적인 시위농성에 들어갔다. 회사는 직장폐쇄로 맞서 극한 대치가 이어졌다.

회사는 식당 스팀을 꺼 밥을 짓지 못하게 했지만 옥상농성은 여론을 탔다. 결국 2월24일 노동청 중재하에 노사가 합의해 노조를 인정받았다. 한국화이자노조는 외투기업 노동쟁의 임시특례법 이후 최초로 노조 결성에 성공해 이후 종근당·유한양행·국제약품으로 이어지는 70년대 제약업계 노동운동의 선두 주자가 됐다.

화이자노조 설립 4년 만에 종근당 노동자들이 74년 8월14일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 결성 직후 회사는 적극 탄압에 나섰다. 당일 밤 분회장 정대근과 부분회장 김용문을 본사로 발령 냈다. 같은해 8월17일엔 야근을 마치고 집에서 자는 조합원 최성문·박만영·김영준을 회사로 연행해 지하실에 감금하고 노조탈퇴를 강요했다. 8월19일 정대근 분회장을 이력서 기재누락 이유로 해고했다. 8월20일엔 원정웅 노조 총무부장을 본사로 전출시켰다가 다음날 대구로 전출시켰다. 노조 회계감사는 본사 총무과장인 형을 통해 권고사직시켰다.

회사는 다시 뽑힌 분회장도 예비군훈련 불참을 이유로 그해 10월7일 해고했다. 또다시 뽑은 분회장도 11월19일자로 해고했다. 조합원들은 폭발했다. 74년 11월20일 아침 200여명이 정문에 모였다. 조합원들은 문을 박차고 공장에 들어와 농성에 돌입했다. 이종근 사장은 11월21일 전 종업원을 집합시켜 “해고자는 절대 복직시킬 수 없고, 노조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공언했다.

회사는 74년 11월23일 아침 조합원들이 다시 정문 앞 농성을 시작하자 남자직원들에게 술을 먹여 폭력을 휘두르도록 했다. 관리부장은 “조합원에게 ×같은 ×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직원들은 여성노동자를 발로 차고 때렸다. 원정웅 전 분회장은 맞아서 중태에 빠졌다. 여성노동자 한 명은 "노조탄압 중지하라"고 외치며 2층 창문을 열고 시멘트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결국 회사는 노조와 4개 항에 합의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지난한 싸움 끝에 종업원들은 사람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습오너인 이씨 일가의 머릿속까지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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