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호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가수 이적이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의 노래 가사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어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시작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연인에게 버려진 상실감이 담긴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곡을 만든 이적은 “놀이공원에서 버려진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만들었다”고 말한다. “기다리라”고 말한 엄마 혹은 아빠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이를 감안해서 노래를 들으면 가사는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행복해지겠지…. (기다림은)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여우의 행복함은 더욱 커진다. 작가는 이를 ‘의식(rite)’이라고 표현했지만 일종의 기다림에 가깝다.

놀이공원의 아이가 느낀 초조한 기다림과 여우의 행복한 기다림 중 우리는 어떤 기다림을 경험해 왔을까.

‘조금만 기다리면 상황이 나아질 것’ ‘경제를 생각해서 조금만 기다려야’ ‘비록 해고되더라도 회사가 잘 되면 나중에’라는 이유로 그동안 노동자들은 성장을 위해 분배를, 회사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며 기다려야 했다.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세월호에서 오지 않는 구조를 기다려야 했던 아이들을, 우리는 아픈 기억으로 가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협상이 예상대로 길어지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기다림을 주문처럼 외우며 삭감과 동결을 주장해 왔던 사용자들은 155원 인상을 인심 쓰듯 내놓았다. 이들은 현재 상황을 ‘비상시국’이라고 말하며 여전히 노동자들은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최저임금 먹이사슬 구조에서 이윤은 대기업·프랜차이즈 본부가 챙기고 그 밑 영세업자와 가맹점주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서로의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

지난해 ‘만약,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면’이라는 주제의 백일장에서 소박한 소망을 밝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는 기억한다.

“최저임금 1만원이 된다면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맨날 물려 입던 옷 대신 새 옷 한 벌씩 사 입힐 수 있어요.” “할머니 편찮으실 때마다 병원비 걱정을 했던 못난 손녀가 할머니만 걱정하는 착한 손녀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산모도우미를 하며 받는 돈 월 100만원 남짓, 최저임금이 오르면 파스를 붙이고 ‘멘소래담’이라도 발라 가며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광장의 촛불을 거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어떤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을까.

앞으로 열흘 안팎이면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아직은 어떻게 결론 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함에도 한 가지 소망을 이야기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됐든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에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미안함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빛나야 할 청춘들에게, 당당해야 할 가장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제대로 된 삶을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나라가 그렇게 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어린 위로와 미안함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 그것을 건네주는 이가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그것이 나라다운 나라 아니겠나.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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