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직장인 A씨는 수시로 데이트를 요구하며 '스폰서가 돼 주겠다'며 애인되기를 강요한 회장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러자 회장은 "근로감독관이 '어차피 과태료가 200만원 정도 나올 것'이라고 했다"며 "합의를 해도 그 이상 줄 수 없다"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다.

요식업계에서 근무하는 B씨는 상사인 C씨의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참다못해 또 다른 상사인 D씨에게 고충을 토로하면서 "C씨를 제재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D씨는 "직장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성희롱은 감내하고 융통성 있게 잘 대처하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철저하게 방치된 셈이다. 그러던 중 B씨는 C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회사는 피해자인 B씨에게 권고사직을 강요했고, 끝내 해고했다. 가해자 C씨에게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줄지 않는 직장내 갑질 성희롱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에 접수된 직장내 성희롱 사례들이다. 최근에는 대구은행 간부가 직위를 이용해 비정규직 여직원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확인돼 '갑질 성추행' 논란이 거세다.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내 성희롱 관련 조항이 신설(1999년)된 지 18년이 지났다. 법이 개정될 때마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규제 실효성 강화를 위한 여러 개선 조치들이 마련됐지만, 성희롱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수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남녀고용평등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6일 여성단체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건은 1천985건으로, 2010년 이후 매년 200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인권위가 올해 초 발표한 '2016년 성희롱 진정사건 유형과 사례분석'을 보면 지난해 성희롱 진정사건 173건의 대부분이 고용주와 상급자 등 권력관계를 악용해 부하 직원을 성희롱한 사건이었다. 피해자들은 성희롱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직장을 비자발적으로 퇴직하는 등 심각한 심리적·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3명 중 1명 "참는다"

문제는 직장내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의 경우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가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직장내 성희롱 피해 내담자 23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103명)의 34%는 "혼자 참고 있었다"고 답했다. 피해 여성 3명 중 1명은 성희롱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혼자 감내했다는 뜻이다.

성희롱 피해사실을 회사에 알렸을 때 받는 불이익 때문에 문제제기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응답자의 57%는 직장내 성희롱 문제제기로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답했다. 파면·해임·해고 같은 신분상의 불이익조치를 받거나 집단 따돌림 등 정신적 피해를 입은 경우가 각각 53.4%나 됐다.

사업주의 성희롱 피해자 보호조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피해자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고, 괴롭혀서 사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고용노동부·인권위·경찰서 등 관계기관에 신고한 40명 중 8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회사를 떠났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희롱 피해자 불이익 금지 조항(제14조제2항)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직장내 성희롱이 피해자들의 고용단절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피해를 주장하는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2차 불이익을 예방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명시해 직장내 성희롱을 당한 여성이 고용단절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득 의원, 이달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발의

최근 국회에서도 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조치를 구체화하고 벌칙 조항을 개정해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발의할 예정이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서울여성노동자회 등 전국 15개 여성단체들과 공동으로 주최한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한 법 개정 토론회'에서 "현행법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고 사업주는 솜방망이 처벌하는 데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며 "이달 안에 실효성 있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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