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가 15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토목건축분과 중앙교섭 해태를 규탄하며 상경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업계 최초로 추진되는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와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 간 중앙교섭이 파행을 겪고 있다. 교섭 개시 두 달이 지나도록 교섭방식을 놓고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중앙교섭이 부담스럽다"며 "관례대로 지역교섭을 하자"는 업체들의 주장이 계속되면서, 임단협 안건을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노조는 지난 9일 교섭을 끝으로 교섭요구를 하지 않고,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업체들은 "노조가 교섭방식에 집착하면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한꺼번에 다 이루려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목건설노동자 '상경총회' 선언=노조는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조 1만 토목건축노동자들이 20~21일 광화문에 모여 총회를 열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불법도급·불법고용 문제와 저임금·장시간 노동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중앙교섭을 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이 교섭을 회피하는 상황"이라며 "업체들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올해 4월18일 1차 교섭 이후 이달 9일 9차 교섭에 이르기까지 사측 대표교섭단이 제대로 모인 적이 없다. 1차 교섭에는 대전·세종지역 업체 3곳과 서울지역 1개 철근콘크리트 업체 등 4곳이 참여했고, 같은달 25일 2차 교섭에는 대선세종지역 업체 1곳만 자리를 채웠다. 사흘 뒤 열린 3차 교섭에서 16개 업체들이 '전국철콘협의회 임시대표단' 명의로 교섭장에 나왔지만 "관례대로 지역별 교섭을 하자"며 중앙교섭을 거부했다.

5월에 열린 4·5차 교섭에는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6차 교섭에서는 수도권지역 59개 업체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서울경인지역철콘협의회가 노조와 중앙교섭 절차 방식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했는데, 다른 지역 철콘협의회들로부터 "너무 앞서가지 말라"는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9차 교섭까지 각 지역별 일부 업체들이 교대로 참석해 지역별 교섭 요구를 하면서 중앙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갔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중앙교섭 부담스러워" 지레 겁먹는 업체들=업체들이 중앙교섭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조 관계자는 "지역업체들과 얘기해 보면 '지금도 노조가 강성이라 지역교섭을 하기 힘든데, 중앙교섭을 하면 얼마나 힘들겠냐'는 말을 한다"며 "교섭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노조에 끌려가서 도장 찍고 오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경인지역철콘협의회 관계자는 "수도권 업체들은 일단 교섭에 나가서 노조와 얘기를 해 보자는 입장이지만 지역에서는 '그냥 하던 대로 하자'는 분위기"라며 "니네(서울경인)가 앞서가면 지역에서 힘드니까 교섭에 나가지 말라는 항의가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에서 중앙교섭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중앙교섭에 집착해 파행으로 가기보단 노조가 다른 전략을 쓰는 게 낫다"며 "올해는 서울경인지역철콘협의회와 먼저 합의를 해서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영철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업체들은 마치 중앙교섭에서 1에서 100까지 다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큰 오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일단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큰 틀에서 합의한 뒤 세부적인 내용은 지역별로 논의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건설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내국인력 수급구조 문제와 임금(형틀목수 기능공 기준 일당 20만원)에 대해서만 큰 틀의 합의를 한 다음 세부항목은 지역별·현장별 특성에 따라 논의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 금융권 노사는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산별중앙교섭에서 큰 틀의 합의안을 도출하면 지부(은행)별로 보충교섭을 한다.

이영철 분과위원장은 "지역에 따라 고용형태나 성과급 등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앙교섭에서 형틀기능공 기준임금만 정해 놓자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사측은 노조가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한자리에 모여 얘기하는 줄 알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노조가 이럴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색안경을 끼고 중앙교섭을 회피하지 말고 일단 교섭에 나와서 얘기하자"고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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