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환호와 좌절이 교차했던 30년 전 기억. 흔히 개인과 가족에게 30년이 주는 의미는 세대교체이며 역사에도 흐름의 변화가 존재하는 주기. 2017년과 30년 전인 1987년을 함께 산 사람들이 30년 만에 다시 맞이한 환희와 회한. 정권의 무릎을 꿇렸지만 좌절 속에 유지된 87년 체제. 촛불항쟁으로 '듣보잡 정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체제를 형성해야 하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다른 30년이 지나면 무엇이 한계와 회한으로 기록될 것인가. 역사의 질문 앞에 서 있는 2017년 체제의 사람들.

이 땅에서 변혁의 꿈을 이룬 세대는 없다. 역사적 변곡점에서 변혁의 꿈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8·15의 환희에 이어진 미군정과 분단, 전쟁과 이승만 독재, 4·19의 승리를 뒤덮은 5·16 쿠데타와 박정희 장기독재, 10·26과 80년 희망의 봄에 피바람을 일으킨 5·18과 전두환 정권, 87년 6·7·8·9월 투쟁의 성과를 뒤집은 노태우 당선 등 시대교체 시기마다 몰아닥친 반동의 물결들. 구체제를 청산하지는 못했지만 부분적 전환의 기록은 곳곳에 남아 있다. 방식과 내용의 차이는 존재한다. 1987년은 그중 한 시기였다. 30주년을 맞아 온갖 기념행사들이 풍성하다. 제 나름의 시각과 공간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고 역사적 의미를 새긴다. 몇 번의 역사적 시기를 비교하기도 한다. 2017년 현재의 상황이 역사적 변천기여서 더욱 그러하다.

87년 1월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다 숨진 박종철의 죽음은 87년 투쟁의 도화선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로 분노의 물결이 확산했다. "호헌 철폐,독재 타도" 외침이 광장에 가득했던 6월 항쟁은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의 희생으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졌다. 분노한 민중의 투쟁은 '속이구 선언'으로 불리는 6·29 선언과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곧이어 억압과 착취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노동자 대투쟁으로 구체적 삶의 변화를 위한 노동자들의 대장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해 12월 대선은 군부정권 연장이라는 결과를 남기며 역사의 반동을 불러오고 말았다. 제한적 법·제도화로 우선 멈춤 했던 87년 항쟁은 30년이 지나 촛불항쟁과 시대교체기에 어떤 시사점을 줄 것인가.

이번만은 구체제를 청산하고 시대 적폐를 일소하기를, 촛불항쟁 주역들이 견인과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촛불 의제 형해화에 방관자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자가 되기를 바란다.

박종철의 형은 올해 1월 30주기에서 “이제 시퍼렇게 되돌아오는 민주주의를 마중 나가겠다. 그 민주주의를 부둥켜안고 얘기하겠다. 고맙다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우린 반드시 승리한다”며 새로운 시대맞이를 열망했다.

이제 민중의 촛불항쟁 열망을 새 권력으로 위임받은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 요구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정권 출발시기 높은 지지율은 민심이 열망하는 기대치의 다른 이름이다. 다만 노동중심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필자에게 문재인 정부 구성 과정에서 다른 부분은 논외로 하고 두 가지 우려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현재 노조탄압으로 갑을오토텍 김종중 열사투쟁이 진행되는 중인데 악질적 반노조주의 대표주자인 갑을오토텍 사측 대리인이 청와대 비서관이 된 것, 이명박근혜 정권 공공부문 노조파괴 주범인 동서발전 이길구의 뒤를 이었던 김용진 사장을 기재부 2차관으로 중용한 것이다.

해당 노조는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를 다양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노동자들로서는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던가. 그 인사들의 향후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말이다. 적폐 청산 주체가 돼야 할 문재인 정부 핵심에 오히려 그 대상이 포함된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이것이 관가와 공공부문, 자본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일반 민주주의 회복과 소통적 조치로 만족할 2017년 체제의 노동자 민중이 아니다. 적폐 청산은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린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노동권을 존중하고 노동자 삶을 질적으로 향상하는 것이 제대로 된 문재인표 노동공약 이행이다. 그 선결조치로 구체제 인적청산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박수에 인색할 필요도 없지만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us)는 맹목적 지지 호소에 근거 없이 화답할 이유도 없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과 집행 과정을 매의 눈으로 살펴보며 결과로 평가하면 될 일이다.

박근혜 정권 타도 주역들과 촛불항쟁을 응원했던 2017년 체제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낡은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 루비콘강은 건넜지만, 뛰어내려야 할 로도스는 아직 멀었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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