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할 건가 말 건가, 만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정리해고를 합의했던 과거 오류 때문이었다.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6월8일 목요일이었다. 오전 11시 민주노총 사무실이 세 들어 있는 서울 중구 경향신문 13층에서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렸다. 의결권이 있는 위원은 31명이었다. 19명 찬성, 9명 반대, 3명 기권이었다. 반대에 손든 9명 가운데 1명은 일자리위원회 참여에 찬성했지만,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반대에 손들었다.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민주노총은 경제불평등·사회양극화 해소라는 촛불개혁 성공을 위한 관건적인 요소는 「민주적 노정·노사관계 구축」이라 판단하며, 이를 위해 노정, 노사(산별교섭 등), 노사정 등 가능한 모든 차원에서 다층적·중층적 교섭(협의) 구조 마련과 정례화를 추진한다.

2. 민주노총은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한다. 민주노총은 일자리위원회 1차 회의 전까지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로부터 「노정교섭(협의) 정례화」와 관련한 명료한 입장과 실행계획 제시를 요구하며, 이것이 확인되지 않을 시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재론한다.

3. 일자리위원회 참여 이후 일자리 정책에 대한 민주노총 대응과 개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적 입장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현행 「교섭실무위원회」를 확대·재편하여, 일자리위원회 논의 의제와 운영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강화하도록 한다.

노동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초기 조치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고, 일자리위원회 기조도 양질의 일자리 확대에 있었다. 개악이 아닌 개혁이었다.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총파업과 위력시위라는 두 축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다는 민주노총의 전통적 기본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점도 작용했다. 한상균 위원장은 당선과 동시에 투쟁력을 과거 영광의 시대로 복원시키려 애를 썼다. 진정성이 있었다. 여러 차례 총파업을 결의했고 민중총궐기도 했다. 그러나 총파업은 조합원 참여도와 사회적 영향력에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민중총궐기에선 박근혜의 차벽을 넘지 못하면서 약화된 전투력을 씁쓸하게 확인하고 말았다. 그런 경험이 깔리면서, 민주노총에 전략·전술이 풍부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일자리위 참여의 배경이 됐다.

감옥에 있는 한상균 위원장의 의견도 영향을 줬다. 한 위원장은 일자리위원회에 개입하자는 뜻이었다. 변화된 상황과 현장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했다. 한상균 집행부는 정파 집행부가 돼서는 안 되고 조합원 전체의 집행부가 돼야 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 중집위원들은 나름대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 16개 산별연맹과 16개 광역본부별로 미리 의견을 수렴했다. 회의가 정파 갈등에 의한 파행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일자리위 참여를 반대하는 의견은 크게 두 지점이었다. 하나는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렀던 노사정위원회처럼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즉시 일자리위를 탈퇴하고 투쟁하면 되는 문제라서 다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의 책임 있는 인사들의 입을 통해 일자리위를 노사정위처럼 운영할 뜻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상태였다.

다른 하나는 일자리위가 정규직 양보론으로 흐를 거라는 우려였다. 어떤 방식으로 정규직을 압박할 것이라는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별다른 논의는 없었다. 일자리위 참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누구는 정규직 양보라 표현하고, 누구는 비정규직과의 연대라 표현하는 것이 이번 결정에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이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할 지점인 것은 분명하다. 현실의 양극화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원 홍민기의 ‘소득불평등 현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체 개인소득자 2천664만명 가운데 연평균 소득 1천만원 미만이 38.4%인 1천22만명이나 된다. 1천만원 이상 2천만원 미만은 21.1%였다. 59.5%가 1년에 2천만원을 벌지 못했다. 6천만원 이상이면 10% 안에 들었고, 8천만원 이상이면 5% 안에 들었다.

개인소득은 노동자 근로소득자뿐 아니라 사업소득자와 재산소득자를 합한 통계였다. 한데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임금격차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얼마나 끔찍한 통계가 쏟아지는지를.

도대체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사회의 10% 안에 드는 노동자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기금으로 내놓거나 정규직 임금인상률보다 비정규직 임금인상률을 더 높이는 것은 자본에 대한 '정규직의 양보'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연대'인가. 이것도 규명해야 할 점이다. 물론 나는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손을 잡는 연대라고 보는 입장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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