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2일 100만 노동자·민중의 총궐기로 촛불혁명이 막 타오르던 당시(11월15일) 서울대교수협의회 주최로 시국대토론회가 열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민주화 이후에도 이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의 효능이 다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같은해 12월9일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소추가 가결된 직후 <경향신문> 12월10일자 “[세상읽기] ‘촛불혁명’은 계속돼야 한다”는 칼럼에서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이렇게 썼다.

“백석 시인의 글에 <오징어와 검복>이라는 동화가 있다. 몸에 뼈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오징어가 한탄만 하다가 농어나 도미에게 길을 묻는다. 원래 뼈가 없으니 그냥 살라거나, 네가 못나 뺏긴 것이니 할 수 없다 한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장대에게 물었다. 욕심쟁이 복어가 뼈를 뺏었으니 되찾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도와줄게, 빼앗긴 뼈 다 찾아라.’ 그래서 지금도 오징어는 나머지 뼈를 다 찾겠다는 일념으로 먹물을 달고 다닌다. 복어는 먹물 탓에 검복이 됐다. 여기서 오징어의 먹물은 민중의 촛불이다. 검복은 박근혜나 최순실 등을 상징한다. 농어나 도미는 부패한 검찰·언론·재벌·관료·국정원·국회의원·새누리당 등이다. 오징어의 잃어버린 뼈는 바로 국민에게서 나간 권력이다.”

<한겨레> 김이택 논설위원은 그해 12월16일자 “[아침햇살] ‘박근혜로 끝’이라는 세력들”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광장에 오른 여고생 이수진양은 ‘꼭두각시가 물러났다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박근혜가 끝’이라는 쪽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쪽으로 나뉜다. 전자는 황교안 대행체제에 힘을 실으며 세상이 ‘법’ 절차를 존중해 빨리 ‘안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자는 8·15, 4·19, 6월 항쟁 이래 ‘죽 쒀서 개 준’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에야말로 박정희-박근혜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친다. 그 체제의 청산과 새 체제의 건설은 40년 묵은 지난한 과제다.”

같은날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은 “대중의 분노로 작두에 올라타지 말라”는 제목으로 노동자·민중의 변혁 요구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 나온 중·고교생 시위대의 발언이 언론에 소개됐다. ‘우리가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을 갓조선(최고의 한국)으로 만들겠습니다.’ 청소년 사이에서 ‘갓(god)’은 최고란 뜻의 접두사라 한다. ‘최고의 한국’이라니, 우리의 갈 방향을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 낸 말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다가올 대선에선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고칠지가 핵심 이슈가 돼야 한다. 이를 토대로 차기 정부가 개혁 프로그램을 짜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분위기에 편승해 온갖 것을 다 뒤집자 하는 극단적 흐름이다. 야당의 대권후보들은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의 모든 것을 부정하겠다 한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권후보는 ‘국가 대청소’를 내세웠다. ‘대청소’란 말이 프랑스대혁명의 단두대처럼 섬뜩하게 느껴진다. 야권 2위 후보는 재벌해체론으로 치고 나왔다. 재벌은 고칠 것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체’라니, 이건 선동에 가깝다. 기회가 왔는데도 개혁을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그러나 개혁의 완장 아래 선무당 굿판이 벌어진다면 이것 또한 큰일이다.”

그로부터 반년 가까이 지났다. 올해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전원합의로 탄핵심판됐다. 곧이어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5월9일 투표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그가 5월10일 대통령에 취임했고 이후 한 달 가까이 일련의 개혁적인 행정조치와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민 지지율은 역대 최고인 84%에 달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앞날이 순탄하지 않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만 바꾼 새누리당인 자유한국당은 3분의 1이 넘는 국회의석수를 무기로 대통령의 국무위원 인사를 방해하고 있다. 개혁적 보수니 중도보수니 하는 정당들도 탄핵당한 수구정당의 촛불혁명 방해책동에 동조하고 있다. 현재의 국회 구성을 청산하지 않고는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수구정당 해체하라. 국회를 해산하고 재선출하라.

다른 한편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인사나 정책은 촛불민중이 요구하고 기대했던 바에 비춰 보면 매우 불철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국회나 언론 등에서 아직 보수·수구세력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데 따른 불가피한 현실적 대응일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에 투표한 서민층과 다른 비특권 기득권층, 즉 은수저계급에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본질적 한계이기도 하다.

재벌 문제가 재벌의 경제·사회·정치 전반에 대한 과두적 지배 문제가 아니라 공정거래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국정원 문제가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되는 막대한 숫자의 직원으로, 친미·반북·반공 대통령을 뺀 누구로부터도 예산·인사·업무 어느 것도 통제받지 않는 국정원의 초헌법적인 무소불위의 국민 ‘감시·처벌’ 권력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정치·선거’ 정보수집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

진짜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제왕적 재벌과 제왕적 국정원인데 말이다. 정치검찰·수구정당·수구언론 등 개혁대상은 모두 이 제왕적 국가·자본 권력에 연루돼 있다. 국가·자본 권력은 헬조선의 악의 축 중의 악의 축이다. 이 악의 축들로 구성된 구체제를 해체하지 않고 갓조선은 어림도 없다.

노동·민중운동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이 문제가 문재인 정권이 아닌 자기 자신의 과제임을 자각하고 과감하게 혁명적 정치투쟁으로 떨쳐나서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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