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워킹푸어(Working Poor)는 일하는 빈곤층을 뜻하는 말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하기 빠듯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계층을 의미한다. 워킹푸어는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에는 중산층처럼 보이더라도, 고용 유지가 불안하고 저축이 없어 갑작스런 병이나 실직 등으로 한순간에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혹은 사업주와 정식으로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비전형 노동자가 크게 늘어나고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사회안전망 미비, 양극화 심화 등으로 인해 스스로를 워킹푸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2030세대는 근로빈곤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청년실업이 구조화·장기화하면서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의 처지가 곤궁해졌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을 편승하거나 악용해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한 사회초년생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그리고 청년들에게는 조직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노동조건이나 업무환경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것을 요구하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정신적으로 나약하다"거나 "신입직원(청년)들이 업무지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평판이 형성·작동한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근속연수에 따른 높은 임금과 정규직이라는 고용안정성을 급부로 삼았지만, 오늘날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델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노동시장은 ‘열정’이 호봉과 고용안정을 대체하는 반대급부로 급부상해 왔다.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로 인해 어렵게 취업한 일터마저 떠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신입사원 이직 현황’ 통계에 따르면 취업 경험이 있는 청년층 400만명 가운데 244만명이 취업 후 1년3개월 안에 첫 일자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퇴사를 했던 이들도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몇 달 이내에 다시 취업을 하게 된다. 위법하거나 위험한 근무환경을 가까스로 버텨 내거나, 도망치듯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사회초년생에 해당하는 청년 워킹푸어의 직무 소진감과 이직률을 높이는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반복되는 과로(야근)와 노동자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근무환경이다. 청년유니온 조사에 따르면 주 5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거나 일터에서 비인격적인 대우나 따돌림을 경험하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에 비해 직장생활 만족도가 낮고 직무 스트레스를 훨씬 더 강하게 느낀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임금수준이나 고용형태와 직무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는 이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고용보험·근로장려세제(EITC)·체당금 등 실업이나 근로빈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도입돼 왔지만 저성장이 구조화하고 산업구조와 고용형태가 다변화한 오늘날 노동시장 현실에 부합하지 않아 효과성이 떨어진다. 20세기형 노동복지·사회보험 정책이 21세기형 워킹푸어 노동현실에 부합하도록 개혁하는 것이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 과제다.

더 나아가 포괄임금제 같이 과노동을 유인하는 잘못된 고용계약 관행을 규제하고,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는 부당한 업무명령에 대한 사회초년생(노동자)의 거부권을 인정하는 등의 제도개선으로 노동인권과 관련한 사회 전반의 인식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주체적 역량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과제 인식으로부터 도출돼야 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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