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주 강정마을에 대해 “해군의 구상금 청구소송은 철회하고 처벌 대상자는 사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달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신뢰회복 조처’라는 단서를 달아 “해군이 청구한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한겨레 5월26일자 6면) 이에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은 “합법으로 진행된 공공사업을 반대하고 (…) 전례가 될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강정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2002년 전남 화순, 2005년 제주도 위미지역에서 추진하다가 주민 반대로 실패했다. 그러다 2007년 강정마을로 정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강정마을 회장을 지낸 강동균 대책위원장은 “사전 포섭된 해녀들과 어촌계·지역유지들이 주도해 7일간 공고와 수시방송 의무도 안 지키고 주민총회를 열었고, 안건을 ‘기지 관련’에서 ‘기지 유치’로 바꾸면서 주민 반발이 계속되자 박수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부와 해군은 사업설명회와 청문회도 안 열었다. 2007년 6월19일 주민 찬반총회에서는 찬성측 해녀들이 투표함을 탈취하기도 했다. 주민 420명은 2007년 8월10일 총회에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표결로 당시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강동균 새 회장을 뽑았다. 열흘 뒤 주민투표에선 725명이 투표해 680명이 반대했다.

이렇듯 갈등 책임은 정부와 해군, 제주도에 있다. 전 행정력이 동원된 유관기관회의에서 해군과 검경은 찬성주민들에게 고소·고발을 유도하고, 반대주민을 구속하고 처벌했다. 반대주민 697명이 연행되고 648명이 사법처리됐다. 34명은 구속되고 벌금도 4억원이 나왔다.

환경영향평가도 안 거친 고시와 절대보전지역을 날치기 해제하고,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조사를 허위로 해서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따냈다. 이 과정에서 멸종위기 동식물들이 누락됐다. 주민들은 국방군사시설 승인고시무효확인 소송에 들어갔고 정부는 재판을 1년이나 지연시켰다. 뒤늦게 15일간 졸속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재고시했다.

당시 해군 전략기획본부장 김성찬 소장은 2007년 6월10일 주민에게 토지강제수용은 결코 없고 주민동의 없이는 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나 해군 참모총장이 되자마자 토지를 강제수용하고 주민이 항의하자 공권력을 동원해 공사를 강행했다.

해군은 수의계약과 비슷한 일괄입찰로 삼성물산·대림산업과 건설공사 계약을 했다. 시방서에는 50년 빈도의 태풍내습에도 견디도록 했으나 정작 태풍이 오자 공사는 지연됐다. 강동균 위원장은 “시공사가 해군에 배상해야 하는데도 거꾸로 해군이 삼성물산에 공사지연 손실금을 물어줬다”고 했다. 시방서엔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 현상변경허가 조건으로 2중 오탁방지막 설치와 폴 파이프를 사용하도록 명시했는데, 이마저 안 지켜 환경오염에 항의하는 주민들이 해상시위에 나섰다. 해상시위로 공사가 지연되자 해군은 삼성물산에 손실금을 배상했다. 이 과정에 해군은 법원 판결도 안 거친 채 상거래 분쟁조정기구인 대한상사중재원 중재로 배상해 줬다. 해군은 그 배상액 중 34억5천만원을 반대주민들에게 구상금으로 청구했다. 소송이 진행 중이다.

투표함을 탈취해 가는 해녀들에게는 길을 터 주고 뒤쫓는 주민들을 막아선 경찰의 행동은 강정마을 10년 흑역사에서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국가가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에게 보여 준 수많은 일방통행이 갈등의 본질인데도 그 국가가 그 국민에게 수십억원의 구상권을 행사하는 게 정상인가. 강정마을 주민들은 청문회장에서 자신들을 “합법으로 진행된 공공사업을 반대했다”고 몰아세운 국회의원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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