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꼭 1년 전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산하 교육기관에서 2주간 'DECENT WORK'를 주제로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도 훌륭했지만 이른바 선진유럽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그들의 노동환경에 또 한 번 놀랐다. ILO가 정한 일반헌장이 곧 그들의 노동법이었다.

더 놀란 것은 ITC 정문에 걸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사진이었다. ILO는 유엔 산하 핵심기구 아니던가. 반기문 사무총장과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의 사진이 나란이 걸려 있는 모습이란, 당시 나에게 인상적이라는 표현으로 다하기 어려웠다.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친구들이 유엔 사무총장의 나라에서 왔느냐고 반갑게 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더 나아가 그들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인류보편적인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ILO 기본협약 정도는 당연히 비준돼 집행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부끄럽게도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업시간에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여전히 결사의 자유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이 아닌 고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어찌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나라가 ILO 기본협약조차 배척해 오고 있단 말인가. 소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이라고 내세우면서 가장 기본적인 천부인권인 노동기본권을 무시한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을 국제수준에 맞게 개정하겠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진 말자. 지금이 가장 빠르다. 전교조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자유로이 교섭할 날이 머지않았기를 소망한다.

요 며칠간만 본다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할 만큼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늦었지만 정말이지 다행이다. 최근 흐름을 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면 “이렇게 빨리 크게 바뀌는구나” 하는, 반면에 노동계에 몸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그동안 우리는 무얼 했던가”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한마디를 더 얹어 본다. 지난해 ITC에서 2주 내내 배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일자리만 주어진다고 다가 아니다”는 국제노동 기준이다. 모든 일자리는 적정한 임금에 반드시 노동기본권이 보장돼야 하고, 사회안전망과 사회적 대화가 충분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만들어져야 한다고 ILO는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그게 'DECENT WORK'다.

요컨대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선언은 이 같은 요건을 갖춘 일자리여야 한다. 정규직이 ‘중규직’ 또는 ‘무기직’ 형태여서는 안 된다. 정년만 보장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인간의 존엄을 온전하게 인정받는 일자리여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에는 임금 차별이 있다. 최저임금에 걸쳐 있는 임금노동자가 공교롭게 비정규직 숫자인 1천만명에 육박한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약속에는 절대적인 수준의 임금보장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합리적인 수준을 벗어난 임금차별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런 약속이 나오길 희망한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돕겠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노동조합은 인간의 존엄을 인정받는 핵심 요건이다.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적정한 임금을 보장받고 동시에 노동 3권까지 보호받게 된다면 이들도 머지않아 더 나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마 정부나 기업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힘을 쏟으리라는 기대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기존에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두 팔 걷고 나섰다. 양대 노총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노동기본권 우산' 안에 모으기 위해 전 조직의 역량을 쏟고 있다. 노동조합을 하기 좋은 때? 이보다 더 좋았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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