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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정규직화 모델의 조건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때 사람들은 ‘상전벽해’라고 표현한다. 뽕나무 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듯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찾아가는 행정을 두고 이런 느낌을 받는다. 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가서 비정규직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하지 않겠다고 했다. 종전에는 어림없던 노후화된 화력발전소는 대통령 지시로 가동이 중단됐다. 전 정권이 가로막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당당하게 불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가 낳은 변화다.

개혁이 시작됐지만 느낌이 찜찜하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장의 태도 돌변에서 상전벽해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 정부 개혁철학과 기조를 따르려는 행동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혼 없는 공무원’ 논란을 제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새 정부의 개혁바람을 타고 출세하려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장에 대한 우려가 일어서다. 문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인천공항공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 간담회에서 “임기 내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올해 내로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화하겠다”고 화답했다. 공사는 정규직이 1천165명인데 반해 파견·용역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는 6천903명(83%)에 이를 정도로 기형적인 인력구조를 갖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 인력증원을 통제해 온 터라 공사는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했다. 정 사장은 올해 말 제2 터미널 완공을 겨냥해 민간위탁을 통해 3천명의 증원을 고려했다가 180도 입장을 변경한 것이다. 비정규직의 간절한 염원을 고려한다면 정 사장의 태도 변화는 반갑기 그지 없다. 문제는 추진 방식이다.

공사는 14일 좋은 일자리 창출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켰다. 올해 말 예정된 제2 터미널 완공에 맞춘 인력수급을 고려했다. 그런데 공사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는 협력업체와 해당 노조, 상급단체, 공사 정규직 노조,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TF가 발족했다. 벌써부터 ‘설익은 방안’들이 나돌고 있다. 기존에 받던 연봉을 깎는 무기계약직 전환 논란이 일었다. 이러니 “대통령이 방문했는데도 공사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는 비정규직의 푸념도 나왔다. 어리둥절한 공사는 해당 소문을 해명하느라 분주하다. 이해 당사자와 협의 아래 정규직화 모델을 추진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빚어진 것이다. 공사는 그저 의욕만 앞선 셈이다. 간접고용의 정규직화라는 난제를 처리하기 위한 세심한 과정과 절차를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간담회에서 “노사정이 함께 합리적 방안을 찾는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도 말이다. 정일영 사장의 행보를 우려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모델은 서울시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달 1일 출범한 120다산콜재단도 그 예다. 서울시와 16개 산하기관·자치구의 행정상담 업무는 애초 민간업체에서 맡아 왔다. 2012년 다산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4년 12월 말 상담사 직접고용을 선언했다. 서울시는 실태조사와 정규직화 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한편 해당 노조와 물밑 협의를 했다. 당시 중앙정부가 공무원과 공공기관 증원에 반대한 탓이다. 민간위탁 업체와 노조는 협의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서울시가 노조와 직접 협의에 나섰다. 서울시의 노동특보들이 직접 노조와 대화했고, 박원순 시장은 이에 힘을 실어 줬다. 연구용역 결과는 이해당사자가 참가하는 토론회를 거쳤다. ‘서울시 소속 공무직이냐, 120다산콜재단을 통한 직접고용이냐’로 논란이 일었지만 후자로 정리했다. 서울시는 재단에 100% 출자했고, 이사를 지명하면서 책임을 졌다. 정규직화 모델은 조례로 제정돼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여기서 살펴야 할 것은 ‘과정’이자 ‘절차’다. 서울시는 산하기관의 간접고용 실태를 파악하고, 기관별 정규직화의 큰 그림을 그린 후 추진했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대안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다산콜센터도 그 일부분이었다. 이해당사자가 얽힌 간접고용 정규직화 모델은 이처럼 세심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를 겪을 수 있다.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도 이런 단계를 밟는 것이 좋다. 중앙정부가 전체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밑그림을 그린 후 추진하는 방식이다. 인천공항공사는 그러한 그림의 일부분이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사정 대화를 통한 대안의 확정이다. 이 과정에서 서둘지 말고 하나씩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은 절차를 무시하고, 노조를 배제했던 종전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자리 보전을 위한 실적 달성용으로 이 사안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박성국 논설위원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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