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종만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연구원

4차 산업혁명이 대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대통령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새 정부는 자율주행자동차·인공지능·3D프린팅 같은 핵심 기술 분야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 주도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 있는 핵심 기술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도 2017년 중점 추진과제의 하나로 4차 산업혁명을 선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16일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국가표준심의회를 열어 범부처 국가표준화 방안을 확정·공고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 속담이 있다.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의 이면을 조금만 들춰 봐도 선뜻 이해 안 되는 점이 많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기정사실화하고 선진국에 뒤처질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정의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대응방안부터 찾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한국의 성장전략이던 추격 전략의 한계인지 고개를 갸우뚱해 보거나 유행에 민감한 한국적 특징인가 쓴웃음을 지어 보지만,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글로벌 의제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이 만만치 않다. 지금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를 좀 더 폭넓고 깊이 있게 톺아보는 것이다. 4회에 걸쳐 △4차 산업혁명의 출현 배경 △4차 산업혁명의 정의 문제 △4차 산업혁명의 원리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을 짚어 본다.<편집자>


스위스 다보스에는 해마다 2천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정계·재계·관계 유력 인사들이 모여든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포럼 참가자들은 약 1주일 동안 세계경제 발전방안에 대한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주요 사안을 폭넓게 논의한다. 세계경제포럼의 2016년 화두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였다. 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의 책 <제4차 산업혁명>은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돼 날개 돋친 듯 팔린다.

4차 산업혁명 전도사답게 슈밥은 전 세계를 순회하면서 과학기술과 디지털화가 기존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모토는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다. 슈밥에 따르면 세계는 첨단과학기술이 일으킬 파괴적 혁신으로 인한 중대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추세를 보여 주는 아래 그래프를 참조하면 슈밥의 호언장담은 다른 말로 번역할 수 있다. “너무나 절실하게 글로벌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소한 1970년대 초 이래로 세계경제는 성장세가 지속적으로 둔화돼 왔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부터는 끝 모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의 실질 GDP 증가율 추세도 비슷한 양상이다. 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의 커다란 순환이 막을 내리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다. 한순간 도드라진 사건이 있다면 역사는 항상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에서 4차 산업혁명은 90년대 말 미국에서 갑자기 융성했다가 2000년대 초 갑자기 사그라졌던 신경제(New Economy)와 닮은 구석이 많다.

신경제는 90년대 후반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상업적 이용이 확대되면서 땅이 융기하듯 수면 위로 부상했다. 컴퓨터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향상됐고, 불황은 과거지사가 됐으며, 물질을 대신해 아이디어가 경제적 삶의 원동력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또한 세계는 인터넷을 매개로 전례 없이 통합돼 갔다. 더그 헨우드(Doug Henwood)는 <신경제의 신화와 현실>이라는 책에서 신경제 당시의 담론 전체를 “컴퓨터 및 통신 기술이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아 과거의 모든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기술순환이 경기순환 대체’ ‘민주주의의 확장’ ‘모두를 위한 번영’이라는 신경제 당시 수사들이 덧붙여지는 순간, 신경제 담론은 4차 산업혁명의 담론과 어지러울 정도로 겹친다.

이와 같이 신경제와 4차 산업혁명 사이에는 주목할 만한 역사적 연속성이 존재한다. 만약 신경제와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냐고 묻는다면,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수준이나 새롭게 발명된 기술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 외에 확실한 다른 이유를 덧붙이지 못할 것이다.

신경제 몰락 이후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초토화시켰다. 2009년에는 ‘탄소세’ 부과에서 금융화 요소가 강화된 ‘탄소배출권 거래제’로 무게중심을 옮겼던 기후변화협약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극심한 이견 대립으로 사실상 결렬됐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전 세계를 일정한 방향으로 통합했던 원리들이 파산했음을 음울하고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자연스럽게 이제 금융이나 기후가 아니면서도 세계를 다시 글로벌 차원에서 통합할 수 있는 대안이 절실해졌다.

이런 대안이 부재한 위기적 상황과 4차 산업혁명의 부상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원래 4차 산업혁명은 유럽연합의 산업생산성 향상을 위한 전략 프로그램으로 2011년 독일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여기에 북미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관련 대규모 기업들이 의기투합하면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컨센서스(global consensus)가 형성됐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빅데이터·자율주행자동차·3D컴퓨터, 그리고 로봇 등의 첨단기술들과 혁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글로벌 차원의 기획이 재가동된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은 분명 급조된 면이 없지 않다. 혁명은 급진적이고 근본적으로 인간을 둘러싼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정체성도 바꾸는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여파가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결과를 낳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미래에 대한 대안적 기획을 제시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장기적인 사회적·문화적 숙성 없이 위기에 떠밀려 섣불리 제출된 대안은 머지않아 힘을 잃을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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