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조선일보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전 마지막 5일 ‘숨겨진 동선’을 보도했다.(5월10일자 4면) 집 근처 호텔에서 선거유세 빈틈을 이용해 한밤에 국정플랜을 짜 왔다는 거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세를 끝내고 귀가 전에 ‘비는 시간’을 주로 이용했고 임종석·양정철·윤건영 등 극소수 측근과 비공개 회의를 계속 열었고 여기서 비서진과 내각 등 인선을 논의한 듯하다고 추리했다.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첫날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을 내정하고 몇몇 장관들 하마평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봤다. 그제서야 하마평에 오른 분들이 대통령선거 내내 왜 그렇게도 페이스북에 문재인 후보를 치켜세웠는지를 이해했다. 몇몇 지식인은 평소의 논리적인 글쓰기를 넘어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교수인 그분은 청와대로 들어갔다 나올 땐 국회쪽 문을 이용할 수 있겠다. 그러다 실패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물론 그분도 1980년대 짧은 옥살이 경험이 있다. 또 다른 교수는 ‘집단지성’까지 들먹이며 후보별 지지율 맞추기에 나섰다.

경향신문은 11일 "진보 어용 언론은 없다"며 논설위원 칼럼을 실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말한 것을 비판한 글이다. 유 전 장관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시민운동가는 한사코 흠과 한계를 찾아내 이를 폭로하는 것이 진보적 가치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는 진보는 무익할 뿐 아니라 유해하다고 유 전 장관 말에 공감했다. 경향신문은 이분의 말을 “저널리즘 원칙과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기사를 쓰라는 충고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권력을 감시하는 펜이 무뎌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 경향신문의 다짐은 ‘경향’답다. 그러나 현실에선 경향도 시민운동가도 모두 틀렸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진보연하던 기자들이, 지식인들이 해바라기처럼 권력을 좇아 움직이는 걸 봐야 한다. 그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그들이 묵묵히 일하는 기자들 욕이나 안 먹였으면 한다.

벌써 샅바 싸움이 시작됐다.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주문하자, 조선일보는 당장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을 하라” 또는 “비효율적인 공공부문과 공무원은 줄이라”고 주문한다. 대통령 부인을 향해선 “첫날부터 튀는 행보”라고 비꼬기 시작했다. 여전히 100석 가까운 의석을 가진 제1 야당은 “주사파 출신 임종석 우려”라며 첫 인선에 각을 세웠다.

여기에 문고리 3인방이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도 주변에 건재하다. SK와 현대·대한항공 재벌들은 수억원씩 써 가며 11일자 신문에 대통령 취임 축하광고를 해 댔다. 이런 것부터 없애야 적폐 청산이다.

선거 내내 일자리를 강조했던 대통령이 분주하게 일정을 소화하던 취임 첫날 서울 광화문에선 한 달 가까이 굶은 노동자 5명이 광고탑 위에서 탈진해 내려왔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선 선거 때 페이스북에서 '쉴드' 치던 지식인보단 비판하는 날카로운 펜이 더 필요해 보인다. 거대조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국가일자리위원회에 어떤 인사들이 들어가는지 감시하는 게 먼저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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