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장면1. 광화문과 울산의 고공농성장, tvN <혼술남녀> PD의 자살, LG유플러스 콜센터 실습생의 자살, 경산 CU편의점 알바노동자 피살…. 한국 사회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 투쟁사업장의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조직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온몸으로 살인적인 노동조건에 맞서야 하고(tvN <혼술남녀>, LG유플러스 콜센터, 경산 CU편의점), 비정규직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조차 힘들고(광화문 고공농성장의 아사히글라스·동양시멘트·현대자동차), 힘들게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부당노동행위에 취약하고 구조조정을 막아 내기는 참으로 버겁다(광화문 고공농성장의 세종호텔·콜텍·하이텍알씨디코리아).

장면2. 최근 대선 토론회에서 돼지발정제 강간모의범은 민주노총을 두고 강성 귀족노조라고 연일 매도했다. 6천만원 이상 받으면 자영업자이며 파업하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런데 이 돼지발정제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이 상당하다.

장면1은 노동조합이 아예 없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 장면2는 노동조합이 그나마 기능을 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위 장면 1·2에는 바로 차별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장면1의 경우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지 않거나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해고(업체 폐업 등)되고 살인적인 노동과 노동조건에 직면한다. 이것이 차별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인식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어떤가. 두 번째도 차별이다. 즉 과거부터 뿌리 깊게 내려오는 육체노동을 낮게 보는 잘못된 풍조에 의해 발생한 차별이다. 학교 교육을 통해 이러한 차별 의식이 강화되기도 한다. “학교 다닐 때 A는 나보다 공부 못했는데 왜 A가 나보다 더 많이 받아?”라는 식의 학력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다.

장면2는 새로운 혐오표현이기도 하다. 돼지발정제 후보가 속한 당에서 수십 년 동안 해 오던 '빨갱이 척결'이 과거처럼 약발이 들지 않으니 새로운 혐오 타깃으로 '강성 귀족노조'를 내세운 것이다.

원래 혐오와 사회적 낙인이란 합리적이지 않다. 실체와 무관하게 특정 집단을 표적몰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돼지발정제 후보가 “강성 귀족노조” 운운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표적은 노동조합 그 자체를 향하고 있다. 장면1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노동조합이 살아남으면 장면2로 넘어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과거에도 '빨갱이'를 빨간 정도(?)에 따라 구별한 적은 없었다. 빨갱이는 그저 빨갱이였을 뿐이다. 새로운 빨갱이로 등극한 '강성 귀족노조'론(?)은 대기업에 집중된 불공정한 경제구조와 재벌의 부당한 지배구조, 대기업에게 오히려 더 낮은 법인세 실효세율, 부족한 사회복지 등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감추고 마치 비정규·미조직 노동자가 힘든 원인이 정규직 노동조합 때문인 것처럼 착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은 무엇이어야 할까. 바로 노동자운동의 단결과 사회적 연대다. 이 힘든 현실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책으로서 너무 뻔하고 식상한 말일지 모르나 유일한 대응방안으로 보인다.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모르거나 공감하지 않으려는 정규직 노동자는 100미터 앞에 있을지 모르는 바위를 보지 못하고 바로 자기 앞 10미터만 보는 것과 같다. 불행히도 많은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조합 조직은 비정규 노동자를 자신의 고용안정을 위한 방패나 교섭력 확보의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굳건한 정규직 노동조합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는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확대로 정규직 노동조합의 파업 자체가 별 위력이 없게 되는 경우마저 생긴다. 단결이 필요한 이유다.

돼지발정제 후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과거 '빨갱이'를 활용했던 것처럼 '강성 귀족노조' 레퍼토리를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강성'이나 '귀족'이 아니라고 답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 사회 문제에 연대하면서 강성 귀족노조가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시민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당연히 후자다.

연대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들과 공감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빨갱이'론(?)에 대한 답변은 "빨갱이가 아니다"가 아니라 "빨갱이가 사회적으로 정당하다"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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