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다. 촛불집회는 몇만 명 수준으로 현저하게 참석자수가 줄어든 오늘, 촛불집회로 열린 촛불대선은 강성 귀족노조가 논란이다. 그제도, 어제도 문제라고 제가 당선되면 단단히 손봐 주겠다고 토론을 했다. 6번 이하 군소후보의 TV토론에서도, 5번까지 주요후보의 TV토론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공약이라 내뱉었다. 홍준표를 비롯한 이른바 보수후보자들이 하는 말이었다. 문재인·안철수 등 당선 가능성 있는 후보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니 그 말에 나는 겁을 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툭하면 민주노총·전교조·강성 귀족노조가 어쨌다고 ‘때려잡자 공산당’ 식으로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여간 거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대선후보자 TV토론회에서 보란 듯이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당연하게 말하는데 나는 자꾸 짜증이 났다. 어느 후보자도, 심지어 진보와 개혁을 외치며 촛불시민혁명을 말하는 후보자들조차 그걸 제때 지적해 잘못된 말이라고 비판하는 토론의 말이 없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TV토론만 보자면 이 나라에서는 강성 귀족노조가 정말 문제이긴 문제인가 보다고 여기게 될지 모른다고 나는 걱정이 됐다. 가뜩이나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의 비정규직 분리 투표소식에 심란하던 차에 말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대선후보자 TV토론에서 대놓고 당연하다고 하는 말이 일부라도 국민이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3%가 문제라고 구체적인 숫자까지 나왔다. 이 나라 노동자의 3%가 문제라고 말했다. 노조 조직률이 10%인데, 그중 한국노총을 빼고서 민주노총 조합원인 대기업 정규직·전교조 등 노동자수를 대략 셈해서 홍준표 후보가 한 말이었다. 그들이 기업경쟁력과 나라경제, 촛불집회로 대한민국을 혼란하게 한 문제아라고 취급하고서 적폐로서 해소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대해 4차까지 진행된 TV토론에서 재벌이 문제라고 말할 뿐이고 그들이 노조가 문제가 아니라고 직접 말하고 토론하는 후보자를 볼 수 없었다. 문재인과 안철수, 심지어 심상정조차도 강성 귀족노조라니 말이나 되는 개념이냐고, 정말 강성이고 귀족이냐고 ‘팩트체크’로 따져 보고 토론하자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네 차례의 TV토론회가 진행되기까지는 ‘이대로 진행된다면 남은 토론회에서도 보고 듣지 못하겠다’고, 이대로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 되는가 보다 하고 나는 낙담했다.

2. 강성 귀족노조. 이 나라에서 이 말은 교사·공무원을 두고서 귀족이라고 그 노조를 말한 것이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을 두고서 1억원 연봉의 귀족이라고 그 노조를 대놓고 비난하는 말이었다. 노동운동사는 ‘귀족’은 이른바 선진국에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투쟁 대신 사용자와의 타협의 길을 걸었던 노동자·노조를 두고서 사용한 말이었다. 우리에겐 낯설었던 그 말이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지나오면서, 본격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이 대놓고 자신의 정책에 반대해서 파업투쟁하는 노동자·노조에 사용하면서 이 나라에서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민주노총 대기업노조를 일컫는 말이 되고 말았다. 과거 인권변호사로 노조활동을 자문하면서 배웠을 말을 자신의 정책을 비판해서 투쟁하는 노동자·노조에 사용했다고 보이는데, 노무현 이후 대기업 정규직노조가 파업하기만 하면 사용됐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 등이 높은데도 투쟁한다고 비난하는 말로 강성귀족노조라는 말이 사용됐다. 민주라는 이름을 단 당 정권에서 투쟁하는 민주노총 대기업 정규직노조를 비난하는 말로 사용했으니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진 보수의 당이, 뭐 도저히 보수라고도 볼 수도 없는 수구반동세력이 사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말은 대기업 노동자라도 사무관리직 노동자가 1억원 연봉을 받는다고 비난해서 쓴 말은 아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조업 생산직이, 고졸 학력의 노동자가 거액 연봉을 받는다고 하는 말이고, 그렇게 받으면 감지덕지지 무슨 파업투쟁이냐고 하는 비난이었다. 생산직·고졸 주제에 감히 꿈꾸기 어려운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투쟁하느냐는 비난이 숨겨진 말이었다. 주로 민주노총 소속 현대차·기아차 등 대기업노조를 두고서 하는 말이었는데, 그 말로 그들은 졸지에 이 나라에서 문젯거리로 취급되고 말았다. 20~30년 동안 근무하면 과장·부장이 돼서 1억원 연봉을 지급받게 되는 사무관리직의 대졸 사원을 두고서 하는 비난의 말은 아니었다. 하긴 이 나라에서는 대졸 사무관리직이 노조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고 여기던 때도 있었다. 아직 그때로부터 멀리 온 것은 아니다. 몇 차례 변명도 했었다. 연장근로에 휴일근로까지 일해서 받는 거라고 하고, 열심히 일해서 회사 실적이 좋아져 받게 된 성과급을 빼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면서 노조는 변명도 했었다. 그건 그렇게 고액의 연봉은 아니라는 변명이었다. 사실 그랬다. 잔업 않고, 휴일에 일하지 않고서 그야말로 법정근로시간만 일하고, 성과급 빼고서 받게 되면 반토막이다. 현대차·기아차 등 주요 대기업 사업장의 통상임금 소송을 맡아온 터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년·30년 근속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지급해 온 시급은 1만원 안팎이다. 그러니 주간에 근로기준법 50조가 정한 대로 1주 40시간만 일하고 별도 성과급도 없다면 정기상여금 700~800%를 더해도 5천만원을 넘길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근속이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대기업 정규직이라도 고졸의 생산직·현장기능직의 경우는 회사 시급이 최저임금에서 크게 웃돌지 못한다. 회사 시급만으로 보자면 중소사업장·비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대체가 귀족이라 할 수 없는 우리 노동자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대기업노조는 귀족노조라고, 투쟁한다고 강성 귀족노조라고 비난을 해 왔다. 1970년대 후반, 중학교 3학년생이었을 때였다. 어머니는 학비 걱정에 공고에 진학하라고 내게 말했었다. 금오공고를 비롯해서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학비 면제, 기숙사 제공의 공업고등학교들이 있었고, 그때 형편을 생각했다면 나는 진학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도 고졸 생산직으로 어느 대기업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하고서 회사가 몇조 원 흑자 실적을 올려 1억원 가까이 급여를 받고서 노조 방침에 따라 노동시간단축, 비정규직 철폐, 상여금의 통상임금 전환 등 노동자권리를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 참여했다고 강성 귀족노조 조합원이라고 비난받았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어쩌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상을 하게 되는 나라,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다’고 하는 나라, 노동자에게는 빌어먹을 세상이다.

3. 드디어 대선후보자들이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다’는 말을 비판해서 토론을 했다. 위와 같은 넋두리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며칠 뒤였다. 지난달 28일 5차 TV토론회에서였다. 문재인 후보는 “삼성이 강성 귀족노조 때문에 해외로 나갔냐” “왜 경제위기를 다 강성노조 탓만 하냐” “재벌개혁이 중요한가, 강성노조 이기주의가 중요한가” 하고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라는 홍준표를 비판했다. 경제위기는 강성 귀족노조 탓만이 아니고, 재별개혁이 중요하다는 대선 유력주자 ‘대세’ 문재인 후보가 한 말이었다. 심상정 후보는 “노조 때문에 망했다고 하면 노조가 강한 독일·스웨덴·프랑스는 진작에 망했어야 하는데 경제위기에도 튼튼하게 버티고 복지국가가 됐다. 무슨 궤변인가” “육체노동자들은 잔업 특근하고 도지사보다 많이 받으면 안 되나” “대기업 노동자라고 해도 파리 목숨이다. 그러니까 기를 쓰고 잔업하고 특근하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그 당이 집권하면서 정경유착, 재벌들 뒷바라지하고 경제 말아먹고 비정규직 늘리고 저임금·장시간 노동 강요하고.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하게 했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노동자 천대하면서 선거 때만 되면 귀족노조 타령하고 강성노조 타령하고 색깔론 타령한다” “그렇게 살지 마시라. 노조는 노동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기본 자격이 안 된다”고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라고 적폐로 해소하겠다는 홍준표를 비판했다. 민주노총 금속연맹·금속노조 간부 출신답게 강성 귀족노조에 대해서 말할 만큼 말했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 후보는 이 나라에서 지금 강성 귀족노조라는 비난을 비난할 만큼 비난했다. 내가 대선후보자를 더는 비판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라는 말을 비판했다.

4. 그런데 오늘은 이런 변명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5월1일 노동절에도 홍준표 후보는 또다시 "강성 귀족노조의 폐해를 끊어야 한다. 그래야 서민이 살고, 비정규직이 살고,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홍준표 후보측 자유한국당 수석부대변인 윤기찬은 기아차지부에서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비정규직 조직분리의 건이 71.7% 찬성으로 통과한 것을 두고 “홍준표 후보가 외쳤던 강성 귀족노조의 폐해가 현실로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후보와 자유한국당만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언론은 물론, 심상정 후보조차 유감의 말을 쏟아 냈다. 심지어 기아차지부가 속한 금속노조도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누구는 ‘귀족노조’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난하고, 누구는 안타깝다고 우리 노조운동의 현실이라고 사과했다. 기아차 노동자들이 그동안 해 왔던 투쟁에 한 번도 함께하지 않았던 자들까지도 비난에 합세했다. 분명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가 연대해서 노동자세상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노동운동의 눈으로 보자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라는 그들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니 말이다. 총투표가 있은 뒤인 지난달 30일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이라던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기아차지부 깃발을 봤다. 광화문네거리의 한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라가 단식농성 중인 김혜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민주노조사수 투쟁위원회 대표가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쟁취하자는 목소리가 촛불집회장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동안 기아차지부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와 노동 3권 보장을 위한 노동법 개정을 위한 민주노총·금속노조 투쟁에 앞장서 왔다. 조직분리 결정이 민주노조로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투쟁 전선에서의 후퇴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노조깃발을 보고 김혜진 대표의 투쟁연설을 듣고 있었다. 그래야 강성 귀족노조가 문제가 아니라는 우리의 비판이 타당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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