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7.3.24 선고 2016나2033477 판결


1. 사건의 개요

가. 2009년 3월 이전 케이티노동조합은 지부 단위로 직접·비밀·무기명투표 방식으로 대의원을 선출하되, 지부 조합원이 100명 이상일 경우 조합원 100명 단위로 1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나. 피고 조합은 2009년 3월25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을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하는 규약 개정을 결의했다.

다. 이에 대해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이 2010년 7월23일 시정명령을 하자, 피고 조합은 2010년 10월28일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 규약 24조2항과 3항을 참석 조합원 89.5%의 찬성으로 다음과 같이 개정했다.

제24조(선출)
② 전국대의원은 지부 단위로 선출한다.
③ 전국대의원 선출인원은 지부 단위로 1명씩 선출한다.

라. 2016년 1월 기준으로 피고 조합은 12개 지방본부, 252개 지부로 구성되고 소속 조합원은 1만8천105명에 이른다. 이 사건 결의에 의할 경우 지방본부나 지부는 규모·조합원수와 관계없이 각각 1명의 대의원만 선출할 수 있다.

마. 당시 소속 조합원수가 20명 미만인 지부는 85개에 이르렀고, 반면 본사지부에 소속된 조합원은 1천648명이었다. 결국 조합원이 1천648명인 본사지부나 조합원이 10명 미만인 항동지부·수영지부 모두 각각 1명의 대의원만을 선출할 수 있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할 경우 이들 지부에 소속된 조합원 1인의 투표가치는 164.8배 정도 차이를 보였다.

바. 피고 조합에 소속된 원고들은 이 사건 결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6조4항의 평등선거 원칙, 22조의 조합원이 균등하게 조합문제에 참여할 권리를 침해해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전체 조합원들의 의사가 반영돼 규약이 개정된 점을 들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수원지법 성남지원 2016.5.13 선고 2015가합207569 판결).

바. 이에 원고들이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심리가 이뤄졌다.

2. 2심 법원의 판단

2심 법원은 “이 사건 결의는 헌법이 보장하는 조합원의 기본적인 인권을 필요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제한할 뿐만 아니라 조합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노조법 16조4항·22조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결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서울고등법원 2017.3.24 선고 2016나2033477 판결).

가. 헌법에서 규정한 노동 3권을 실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결의나 활동도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나아가 노동조합이 ‘자주적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조합민주주의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한다든지 노동조합 내 소수자의 조합문제(운영) 참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 조합 임원선거와 관련해서도 평등 원칙은 구현돼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평등’이란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조합 임원선거에서, 단순히 조합원에게 1인1표를 부여했다는 산술적인 평등을 넘어 투표의 결과가치 또는 성과가치의 평등까지 달성돼야 한다. 이 사건 결의는 대의원 선거에 관한 조합원의 투표가치 또는 성과가치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해 무효이다.

3. 평석

가. 노동조합 자치규범의 규범력과 그 한계

노동조합이 규약에 근거해 자체적으로 만든 규정은 일종의 자치적 법규범으로 소속 조합원에 대해 법적 효력을 가진다(대법원 2000.4.11 선고 98두1734 판결 참조). 그러나 자치적 법규범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헌법에서 보장하는 조합원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필요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침해 내지 제한하거나 강행법규에 위반돼서는 안 되고, 이러한 제한에 위반된 자치적 법규범의 규정은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02.2.22 선고 2000다65086 판결 참조).

나. 노조법 내 평등선거 원칙

헌법 11조1항은 모든 영역에서 평등권 또는 평등 원칙을 규정한다. 노조법 17조2항은 대의원대회의 민주적 구성을 위해 “대의원은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투표에 의해 선출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나아가 노조법 22조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균등하게 그 노동조합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평등 원칙과 함께 조합원의 조합임원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규정한다. 위 규정들을 종합하면 조합 임원선거와 관련해서도 평등 원칙은 구현돼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평등’이란 조합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소수자가 보호되는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순히 조합원에게 1인1표를 부여했다는 산술적 평등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투표의 결과가치 내지 성과가치의 평등이 달성돼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비록 조합원들에게 1인1표가 부여됐지만(형식적 평등은 충족), 소속된 지부에 따라 많게는 조합원 1인의 투표가치가 164.8배 정도 차이가 발생해 심각한 불균형이 있었다(실질적 평등은 위반). 대상판결은 노동조합 내 평등선거 원칙을 형식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실질적 평등을 의미한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 소수자보호의 원칙

조합민주주의는 다수 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조합을 운영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주의할 점은 아무리 다수라고 하더라도, 조합원의 기본적 인권을 필요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제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수자 보호는 조합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본 축이자 핵심 원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자주적 운영이라는 명목으로 조합민주주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하거나 노동조합 내 소수자의 참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대상판결은 조합민주주의에서 소수자 보호 원칙을 새삼 확인하고,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균등하게 그 노동조합의 모든 문제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노조법 22조의 규범력과 취지를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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